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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설교문 - 나의 방패되신 하나님(시편7:10-11)

작성자
숭실교회
작성일
2020-03-26 16:36
조회
4884
나의 방패 되신 하나님!

본문말씀: 시편 7:10-11

이 설교문에서는 “나의 방패 되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시편 7편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이 7편을 포함해서 3편, 4편, 5편, 6편이 모두 다윗의 시편인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는 다윗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내용의 시편들입니다. 시편 7편이 다윗의 간절한 기도가 담겨 있다는 것은 표제에서부터 드러나는데요. 표제를 보니까 “다윗의 식가욘,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따라 여호와께 드린 노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식가욘”이라는 말의 의미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제일 그럴듯한 의미는 “탄식”입니다. 왜냐하면 7편의 기도내용을 살펴보면, 다윗이 탄식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다윗이 탄식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베냐민 사람 구시 때문이었습니다. “구시”라는 인물은 성경에서 시편 7편에만 등장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인가를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베냐민 지파는 사울 왕이 속해 있던 지파라는 것이고요. 그래서 다윗이 사울을 이어서 왕이 되었을 때, 베냐민 사람들이 반대를 많이 했다는 겁니다. 사무엘하 16장 말씀을 보면,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서 급히 도망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때에 베냐민 지파에 속한 “시므이”이라는 사람이 다윗을 따라오면서 “사울 가문의 왕위를 찬탈하더니 잘 되었다.” 그러면서 저주를 퍼붓습니다.

유사하게 베냐민 지파의 구시라는 사람도 아마도 다윗에 대하여 비난과 저주를 일삼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7편 3절과 4절을 보시면, 이 구시라는 사람이 다윗을 어떻게 비난하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이라고 기도합니다. “이런 일을 행하였거든”이라는 말씀이 다윗에 대하여 비난하는 구시의 말을 가리키는 것 같은데요. 그러나 다윗은 정확하게 (구시가 다윗이 행하였다고 비난하는) 이런 일이 무엇인지를 밝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에 “손에 죄악이 있다. 그러니까 어떤 불의를 저질렀다.”,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다. 그러니까 평화조약을 맺은 사람을 부당하게 공격했다.”, 그리고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다. 무고한 사람으로부터 폭력적으로 무엇인가를 탈취했다.”라고 적고 있는데, 이러한 내용이 다윗을 향한 구시의 비난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시라는 사람은 다윗이 아주 흉악한 일들을 행하였다고 비난하고 다니는 겁니다. 다윗이 그러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니까 하나도 사실이 아니에요. 다 근거 없는 거짓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으로서는 너무도 억울하고 괴롭습니다. 진짜 괴로운 일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그게 사실이 아닙니다. 정말 억울합니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억울함과 괴로움을 들고 하나님께 나가서 탄식으로 기도합니다. 5절을 보시면,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무슨 말씀이냐면요? 베냐민 사람 구시가 말하는 대로 다윗이 온갖 악한 일을 저질렀다면, 하나님께서 원수를 보내어 자신의 생명을 해하게 하셔도 좋고, 그래서 자신의 모든 영광이 땅에 떨어져도 좋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다윗은 그렇게 악한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구시가자신에 대하여 비난하고 다니는 일들이 정말로 억울하고 괴롭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일일이 설명하고 다닐 수가 없으니까, 하나님께 “제 억울함을 풀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편 7편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드리는 탄식 기도의 핵심내용이 7절과 8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이 자신과 자신을 비난하는 구시 사이를 심판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미 심판의 결론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나의 의(올바름)와 나의 성실함(결백함)을 따라 심판하소서. 그리고 악인의 악인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라고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자신이 있습니다. 자신은 구시가 비난하는 악한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을 돌아볼 때에 바르고 결백하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무고한 자신을 비난하고 거짓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구시가 악한 자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무고한 저를 비난하는 구시를 심판하시고, 저의 억울함을 풀어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는 겁니다.

성도 여러분.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참으로 당당하게 “나는 억울합니다. 나는 결백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좀 이상하지 않나요? 더욱이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그렇게 자신의 의와 결백을 내세우면서 하나님께 구원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잖아요? 누가 세상에서 자신의 의를 내세우면서, 기도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처음에 다윗의 기도를 읽으면서 “좀 이상하다.”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묵상을 잠시 멈추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리저리 주석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아니! 다윗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는데, 설마 진짜로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다윗은 지금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세리와 함께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는 바리새인과 같이 위선자로서 기도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바리새인이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는 저 세리와 같지 않으니 감사합니다. 나는 금식도 하고요. 십일조도 하고요. 도둑질도 하지 않고요. 그래서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나는 의롭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하나님은 바리새인처럼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기도는 받지 않으신다.” 그렇게 말씀하시잖아요. 그러면 지금 다윗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의의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다윗은 하나님 앞에는 그 누구도 의로운 인생이라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시편 143편이 다윗의 시편인데요. 2절에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눈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그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다윗이 시편 7편에서만 예외적으로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기도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라는 다윗의 기도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한 주석을 보니까 “다윗의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고백이다.” 그렇게 적고 있더라고요. 무슨 말씀이냐면요? 지금 다윗은 엄청나게 괴로운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구시가 온갖 거짓말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악한 사람으로 오해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다윗을 다 악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것을 생각할 때마다 너무도 억울하고 괴롭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구시가 비난하는 것과 같은 악한 일들을 행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자신은 의롭고 성실해요. 달리 말씀드리면 다윗은 결백합니다. 그것을 누가 드러내 주실 수 있는가? 바로 하나님입니다. 다윗은 바로 이 사실, 하나님만이 자신의 의와 성실을 따라서 자신의 억울함과 결백함을 풀어줄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사람은 다 불의하지만, 오직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 그래서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에요. 1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은 어떤 재판장이신가? 의로우신 재판장님. 공의로 재판하시는 재판장님이십니다. 그래서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무엇에 대하여 분노하시는가? 12절에 보면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죄를 저지르고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다윗은 구시와 같은 사람, 그리고 그에게서 거짓을 들은 모든 사람은 무고한 자신을 오해할지라도, 하나님만은 자신의 의와 성실함, 자신의 억울함과 결백함을 알아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의와 성실을 따라 심판하소서!”라는 다윗의 기도는 바리새인처럼 자신의 의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하나님은 저의 억울함을 잘 알고 계시지요? 그래서 저는 이 억울함 속에서 오직 의로우신 하나님만 의지하겠습니다.”라는 기도, 그래서 하나님만 신뢰하고 의지하겠다는 다윗의 믿음을 표현하는 기도입니다.

시편 7편에 의로우신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신뢰와 믿음이 잘 나타나 있는 두 구절이 있습니다. 먼저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다윗은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고 있냐면요?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 그래서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결백을 드러내주실 하나님, 그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삼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가? “내가 주께 피하오니”라고 고백하지요. 그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겠다. 세상의 사람들 믿지 않고 그 하나님만 신뢰하고 의지하겠다. 이러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만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10절입니다.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방패는 적의 공격을 막는 도구입니다. 지금 구시와 같은 사람이 사방에서 다윗을 공격합니다. 비난합니다. 거짓으로 괴롭게 만듭니다. 그런데 그것을 막아주실 방패가 있습니다. 누구신가요? 네.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구원이 “하나님께 있다.” 그렇게 고백하는 겁니다. 시편 3편 8절과 동일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다윗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입니다. 구시와 같은 사람 때문에, 억울하게 고난을 겪고 있는 다윗은 의로우신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분만 신뢰하며 의지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분만이 나의 방패가 되시기에, 자신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다윗은 “하나님! 나의 의와 성실함을 따라 심판하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삼고, 힘겨운 세상에서 하나님만 신뢰하고 하나님께만 구원이 있음을 고백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그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특히나 오늘 코로나 바이러스가 위협하는 시대에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지 모릅니다. 물론 교회가 실수하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말로 억울하기 그지없는 비난입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 앞에서 오늘 다윗처럼 “하나님. 주님의 교회가 받고 있는 이 비난, 이 억울함을 주께서 아시오니 이 억울함을 풀어 주옵소서!”라고 이 땅의 교회들을 위하여 더욱 간절히 기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주여, 저희가 이 힘든 시기에 더욱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하게 하옵소서!
-주여, 이 땅의 교회들이 받고 있는 억울한 비난들이 사라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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