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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설교문 -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2:1-12)

작성자
숭실교회
작성일
2020-03-27 22:02
조회
5711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본문말씀: 시편2편 1-12

아주 많은 것을 이루고 무엇 하나 아쉬운 것이 없는 사람이 어느 호텔에 투숙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호텔 직원에게 그 호텔에서 가장 싼 방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호텔 직원도 알 정도로 아주 유명한 부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호텔 직원은 그 사람에게 왜 당신 같은 분이 제일 싼 방을 찾느냐고 물었습니다. 덧붙여서 당신 아들도 그 호텔을 찾으면 가장 좋은 방을 찾는데 당신은 어떻게 해서 제일 싼 방부터 찾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호텔 직원에게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자기 아들에게는 자기 같은 부자 아버지가 있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그런 아버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나 이룬 것으로 보면 당연히 이 사람은 아들보다 더 좋은 방을 구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정작 좋은 방을 구한 사람은 이 사람을 아버지로 둔 아들이고 정작 이 사람은 가장 싼 방을 구했습니다.

저는 이 짧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행복하기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 물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면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물질이 필요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당장 굶어 죽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건강도 필요하고, 자기가 하는 일에 보람도 느끼면 좀 더 행복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앞의 짧은 이야기에서 말해주는 보다 중요한 행복의 요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부자는 정작 비싼 방을 얻지 못하고 가장 값싼 방을 구하는데, 그 아들은 가장 비싼 방에 머물 수 있었던 것일까요? 자신이 그렇게 해도 걱정이 없게 해주는 믿고 의지할 사람, 부자인 아버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믿고 의지할 대상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언젠가 뉴스를 보았는데요.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해주었습니다.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생각하면, 엄청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미국에서 공부할 때에 너무 어려운 때가 있어서, 복권을 사본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 복권 당첨되면, 저만을 위해서 쓰지 않고요. 좋은 일에도 많이 쓰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결과를 기다리는데 당첨될 생각을 하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당첨이 되면 이것을 해야 되겠다, 혹은 저것을 해야 되겠다고 꿈을 꾸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당첨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제가 잘못 될까봐 하나님이 생각도 하지 마라.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복권에 당첨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행복했을까요? 아닙니다. 거의 10에 9는 다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흥청망청 쓰다가 망한 사람이 있고요. 돈이 많으니까, 엉뚱하게도 좋지 않은 일에 손을 대었다가 망한 사람도 있고요. 더 불행하게는 돈 때문에 싸우다가 부부가 이혼을 합니다. 심지어는 가족 간에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냐면요? 복권에 당첨되는 사람들에게는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고립되어 사는 겁니다. 주변에 믿고 의지할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돈이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겁니다. 이런 일을 생각해보면,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행복의 중요한 조건이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일이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가 믿고 의지할 대상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인생들을 하나도 믿지 못하게 될 때에도, 여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설교문에서 함께 생각할 시편 2편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 바로 이런 행복입니다. 마지막 절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선언합니다. “피한다.”는 말이 “믿고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복이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시편 2편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말씀을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제가 시편 1편을 함께 나눌 때에, 시편은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 그 교훈을 우리에게 들려준다고 적었습니다. 특히 시편 1편과 2편은 시편 150편의 서론과 같은 말씀이고, 두 시편에서 시편전체 행복론의 핵심을 말해주고 있다고도 적었습니다. 시편 1편 1절이 “복 있는 사람은, 혹은 행복한 사람은”으로 시작되고, 시편 2편 마지막 12절이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이 복이 있도다. 행복하도다.”라고 말씀하는 데서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1편은 인생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인생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한쪽에는 행복한 사람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악한 길을 걸어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고요. 반면에, 불행한 사람은 하나님을 멀리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인생입니다. 이렇게 시편 1편은 두 종류의 사람을 대조하면서,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 그리고 누가 불행한 사람인가? 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시편 2편 역시 1편과 유사하게 대조법을 통하여, 행복하게 사는 인생과 불행하게 사는 인생을 우리에게 교훈하여 줍니다.

먼저 1절에서 3절을 보십시다. 이 3개의 절에서 시편기자는 어떤 사람이 불행한 사람인가를 말합니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는도다.” 원어를 보면, “어찌하여?”라는 굉장히 강조되고 있습니다. 원어에서도, 그리고 우리 개역성경도 “어찌하여”라는 말이 한 번 밖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주석서를 보면 사실 “어찌하여”라는 말은 “1절에서 3절까지 모두 적힌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4번 이상 기록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어찌하여”라는 단어가 강조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보통 성경에서 "어찌하여"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탄식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으로 시편 22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하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면서 탄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다윗이 부르짖은 이 말씀을 인용하셔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마27:46)”라고 아버지 하나님을 향하여 탄식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 2편에 기록된 “어찌하여”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탄식의 외침이 아닙니다. 시편 2편에서 “어찌하여”는 시편기자의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습니다. 시편기자가 왜 안타깝고 답답해 하는 것일까요? 지금 시편기자가 보기에 불행한 길을 걷고 있으면서도, 그 길이 불행한 길임을 모르고 오히려 행복한 길이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을 바라보니까 정말로 안타깝고 답답한 겁니다.

이 사람들이 누구냐면요? 1절과 2절에 나와 있는 이방 사람들, 세상에 권세 잡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자를 향하여 대적하고 있습니다. 왜 냐하면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인생의 행복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3절 말씀이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인데요.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이 벗어나고자 하는 매인 것, 결박은 무슨 감옥에 갇혀 있거나, 올무에 묶여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후에 말씀을 드리겠으나, 4절에 보면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라고 말씀하지요. 이 말씀은 하늘보좌에 계시는 하나님을 상징적으로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진짜 왕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세상에 권세 잡은 악한 자들이 이것을 인정하기 싫은 겁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싶지가 않은 겁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오히려 그들을 옭아매는 것과 같고, 그들을 결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다스림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자유요,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방의 백성들과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하나님이 없는 행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벗어나는 행복입니다. 그래서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신 마음대로,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싶다는 겁니다. 그것이 참 자유와 행복을 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때때로 그렇습니다. 사춘기의 자녀들이 “간섭하지 마세요. 내 마음대로 할 겁니다.”라고 부모님들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자신들 마음대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 같고, 그렇게 되면 진짜 행복할 줄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착각입니다. 대부분 이런 자녀들은 행복의 길이 아니라, 오히려 탈선의 길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의 사랑과 돌봄이 없이는 우리의 자녀들은 행복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가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집이 답답합니다. 자신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받을 유산을 미리 받아가지고, 아버지에게서 멀리 떠납니다. 자기 마음대로 삽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하면서, 삽니다. 처음에는 행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가진 것을 다 탕진하였습니다. 돼지가 먹는 열매로 배를 채웠습니다. 그러다가 깨닫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 참된 행복이 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세상을 보면 시편 2편에 나오는 권세 잡은 자들처럼 하나님이 없는 것이 참된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인생이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진행되면서 수많은 인생들이 교회를 비난합니다. 그 이면에 무엇이 있나요? 교회가 필요 없다. 하나님이 필요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수많은 인생들이 하나님 없이 살아갑니다. 자신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그것이 자유요,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요? 시편기자가 고백하듯이, 하나님이 우리 행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2편 기자는 이어지는 말씀에서 하나님이 없는 인생이 왜 행복할 수 없는가를 알려줍니다. 좀 전에 읽었던 4절을 보시면,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조금 전에 적었듯이 “하늘에 계신 이”는 세상을 다스리는 진짜 왕이신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그분이 자신에 대적하고 있는 세상의 권세자들을 향하여, 하늘에서 보시고 비웃고 계십니다. 자신을 향하여 대적하는 악한 권세자들에 대하여 “가소롭도다.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자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렇지요? 이방의 백성들과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이 아무리 힘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대적할만한 상대가 되질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는 그들이 어찌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께서 가소롭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통치를 부정하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온 세상의 통치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통치로부터 벗어나려고 애를 쓴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 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권세 잡은 자들이 악하게 하나님의 통치를 부정하며 하나님께 대적하면 일어나느냐면요? 5절에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이라고 말씀하고, 9절에 “네가(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 믿음의 백성)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라고 말씀하며, 마지막으로 12절 전반절에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대적하는 무리들. 악한 권세들에 향하여 하나님은 무섭게 진노하십니다. 그 진노로 인하여, 악한 자들의 최후는 “망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힘이 있어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하나님을 대적하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요? 결국 그런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 멸망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결코 행복할 수 없고, 오히려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불행한 인생입니다. 그러면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요? 먼저 10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군왕들이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얻을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시편기자가 하나님이 없이 살려는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에게 “지혜를 얻으며 교훈을 얻으라.”고 권면하는 겁니다. 어떤 지혜와 교훈을 얻으라고 하는 것일까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한편으로는 이제까지 세상에서 권세를 잡았다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무시하여 대적하고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것, 이것이 잘못된 것이고 착각이라는 지혜와 교훈을 깨달으라 그 말씀이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다면 진짜 행복의 길은 무엇인가? 그 지혜와 교훈을 알려줄테니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진짜 행복을 주는 교훈은 무엇일가요? 11절에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 거룩한 두려움을 품고 그분을 섬기며 즐거워하는 일. 이것이 인생에게 행복을 주는 길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세상의 악한 자들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진짜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인 것을 인정하고, 그 다스리심을 수용하는 인생. 그리하여 왕 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다스리심을 기뻐하는 인생에게 참 된 행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12절 후반절에는 이 말씀을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라고 요약하여 줍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피한다.”는 말은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누구를 의지할 수 있나요? 믿고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왕이시고 통치자 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인생을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 여러분. 시편 전체에서 결국 말씀하는 인생이 맛볼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 어디에 있냐면요? 바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사는 인생들을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시편 2편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에 관한 지혜요 교훈입니다. 시편 112편 1절로 3절 말씀을 읽으면서 이 설교문을 끝내겠습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경외하고 자신의 말씀을 즐거이 순종하는 자에게 후손대대로 이어지는 복과 행복을 약속하십니다. 이 말씀 붙잡고, 인생의 최고 행복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1)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일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고 그 길에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2) 하나님 없이 오늘도 살아가는 세상의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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