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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설교문 - 구원은 여호와께!(시편3:1-8)

작성자
숭실교회
작성일
2020-03-26 16:35
조회
6498
구원은 여호와께!

본문말씀: 시편3:1-8

이 설교문에서는 “구원은 여호와께!”라는 제목으로 시편 3편 말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이 시편은 다윗이 지은 시편인데요. 제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는 시편 3편에 대해 “어려운 때의 아침 찬송”이라고 설명해 놓았습니다. 조금 후에 살펴보겠지만, 시편 3편은 다윗이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을 겪고 있을 때 지은 시편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때에 지은 시편이기 때문에, 아마도 다윗 자신도, 그리고 후세의 성도들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아침에 일어나게 되잖아요. 그러면 이 시편을 펴들고, 하나님께 찬송하듯이 묵상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 그러면 다윗이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닥쳤을 때에 어떤 지혜를 따르라고 교훈할까요? 함께 나누면 좋겠습니다.

첫째, 다윗은 아무리 힘겨운 때에라도 여전히 희망을 볼 수 있는 믿음을 가지라고 교훈합니다. 조금 전에 적었듯이 시편 3편은 다윗이 인생에서 겪었던 가장 큰 시련의 때에 지은 시편입니다. 시편 3편이 지어진 배경을 알 수 있는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도 아마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라고 되어 있을 겁니다. 이것이 이 시편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입니다. 성경에는 사무엘상 15장부터 18장에 이 역사적 배경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다윗의 아들 가운데 압살롬이 있었습니다. 셋째 아들이었는데 인물이 좋고 지혜가 뛰어났기 때문에, 다윗이 가장 사랑하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압살롬이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아, 아버지 다윗을 대적하는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아버지의 가슴에 칼을 꽂고 자신이 왕이 되겠다고 아버지를 배신한 겁니다. 그 상황에서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보다 압살롬을 따르는 백성들이 더 많았습니다. 다급해진 다윗은 자신을 따르는 일부 사람들과 더불어 급히 왕궁을 떠나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피신이 아니라, 도망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상황에서 지은 노래가 시편 3편의 말씀입니다.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아들로부터 배신을 당한 다윗의 고통을 그대로 담은 탄식입니다. “하나님! 나를 죽이겠다는 사람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 가운데 제가 가장 사랑하던 아들 압살롬도 있습니다.” 정말로 기가 막히는 노릇이지요. 가장 사랑하던 아들이 배신을 하고요. 그것도 모자라서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겠다는 상황이고요. 그 아들을 피하여 도망치는 다윗 자신을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고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교우 여러분. 다윗의 수모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무슨 이야기냐면요? 반란을 일으킨 아들을 피하여 도망가는 다윗을 보고 많은 대적들이 다윗을 보고 “아. 하나님이 저 사람 다윗을 버렸구나!” 이렇게 조롱하였다는 겁니다. 그 가운데 시므이라는 사람이 대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다윗 이전에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사울의 친척이었는데요. 평소에 다윗이 사울 왕가의 왕권을 빼앗았다고 생각하여 원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다윗이 아들을 피하여서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 저주를 쏟아 부었습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과 8절에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눈을 감고 이 상황을 상상해보십시오. 아들을 피하여 도망가는 것도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수많은 대적들이 다윗을 향하여 “잘 되었다. 너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저주를 받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떨까요? 만일 제가 다윗이었다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살려고 도망치기보다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성도 여러분. 다윗은요. 이 상황을 묵묵히 견딥니다. 자신을 향하여 저주를 퍼붓는 시므이를 신하들이 죽이자고 그랬는데도, “아니다. 괜찮다.” 그러면서 저주를 그대로 들으면서 갔습니다. 물론 그 상황이 너무도 힘이 들어서 하나님께는 탄식하고 있었지만, 쉽게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다윗은 견디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견디는 힘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이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3절에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지 않은 중요한 원어가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웨”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는데, 번역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러나”라는 접속사입니다. 제가 이 구절을 묵상하면 한글성경에는 누락된 이 “그러나”가 3절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다윗은 지금 절망의 상황에 있습니다. 인간이 견디기 힘든 나락의 상황입니다. 희망을 전혀 발견할 수 없는 상황에 가깝습니다. “그러나(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희망을 꿈꿀 수 없는 그 상황에서 희망을 봅니다. 희망의 근거가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나의 방패다. 하나님이 다윗을 지켜 주실 것이다. 그렇게 고백하고요. 나아가 하나님이 나의 영광이 되시고 나의 머리를 드시는 분이다. 지금 이 나락의 상황에서 자신이 다시 머리를 들 수 있게끔, 자신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다윗은 고난과 절망의 상황을 뚫고 묵묵히 걸어가는 겁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다윗과 같은 이 믿음을 소유할 수 있길 바랍니다. 때때로 인생의 시련이 다가옵니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 다가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든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지금 코로나의 상황이 우리를 너무도 힘들게 만듭니다. 도무지 일상생활을 자유롭게 영위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중단되어 버렸습니다. 치료제와 백신이 나와야 하는데, 금방 나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모두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아우성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인 저와 여러분은 “그러나(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처럼 여전히 희망을 꿈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처럼 여전히 우리의 방패되시고 우리의 영광이 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질 수 있길 바랍니다.

둘째, 다윗은 믿음의 사람들은 어려울 때 기도할 수 있다고 교훈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절망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희망이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절망할 때, 우리에게 여전히 희망 되시는 하나님께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기도하는 일입니다. 다윗이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4절을 보십시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정말로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에게서 희망을 보았고,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교우 여러분. 놀라운 사실은 다윗은 기도하면서, 이미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저는 다윗의 이 믿음의 모습을 보고, 제 자신과 비교하면서 부끄러웠습니다. 왜냐하면요? 때때로 기도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이것을 들어주실까?” 그렇게 의심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마치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교훈하시는 것처럼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믿음으로 기도하라.” 이 말씀입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소망이 없는 상황처럼 보였으나 자신의 부르짖음에 응답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성도 여러분. 응답의 확신으로 기도하는 다윗이 놀라운 모습을 저와 여러분에게 보여줍니다.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저는요. 이 구절을 읽을 때, 소름이 돋았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지금 다윗은 어떤 상황인가요?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그리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겠다고 배신하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 아들을 피하여, 다윗이 도망치고 있습니다. 다윗을 향하여 “너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며 저주를 퍼붓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이런 상황에서 “편히 누워서 자고 깼습니다.” 무슨 말이냐면요? 아들은 배신하고, 백성은 조롱하고, 금방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두 다리 쭉 뻗고 편히 잔다는 겁니다. 이게 사람인가요? 저는요. 일상적인 인간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가끔 불면증을 경험합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거나, 큰 기도제목이 있거나, 그러면 며칠씩 잠을 설칠 때가 있습니다. 그 불면의 괴로움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이 혹독한 상황에서 다윗은 불면증을 모릅니다. 제 생각으로는 잠을 잘 수가 없는 상황인데도, 두 다리 쭉 뻗고 잠을 자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천만인이 진을 치고 나에게 싸움을 걸어올지라도,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렇게 고백합니다. 얼마나 엄청난 배짱인지 모릅니다. 다윗은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이런 놀라운 일이 어디로부터 온 것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부르짖어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믿음이 한없이 부럽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런 믿음, 이런 배짱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기도, 확신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제가 다른 것은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압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늘보좌를 움직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우리의 기도가 향기가 되어서 하나님께 올라가고,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교회에서 밤에 중보기도를 하게 됩니다. 말레이시아 선교팀을 위해서 중보하기도 하고요. 총력전도주일을 앞에 두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때에 저도 교육관에 가서 기도하면서 성도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무엇을 느끼냐면요? 여러분이 기도하시는 소리가 너무 듣기 좋은 거에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들립니다. 저도 그러한데, 하나님은 어떠하실까요? 우리의 기도를 향기로 아시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의 기도를 기뻐하시는 겁니다. 이 사실을 알고 다윗처럼 확신의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셋째, 다윗은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교훈하여 줍니다. 이 설교문의 제목을 “구원은 여호와께”라고 정했습니다. 본문 8절에서 그대로 가져온 제목입니다. 시편 3편의 핵심 구절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8절을 크게 읽어보십시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꼭 생각나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편 60편 11절 말씀입니다. 이 시편 60편도 다윗이 오늘 3편과 유사하게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을 때, 깨달은 말씀을 들려주는 시편인데요.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8절 말씀에 “구원은 여호와께 있습니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말씀은 60편 11절 말씀에서 “사람의 구원은 헛됩니다. 사람에게는 진짜 구원이 없습니다.”는 사실을 알 때,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말씀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지금 그렇게 사랑했던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배신을 당했습니다. 자신이 그렇게도 총애했던 많은 신하들이 압살롬의 편이 되어, 다윗을 죽이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자신을 왕으로 생각했던 수많은 백성들이 지금은 압살롬과 함께 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다윗은 이 상황에서 인생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믿고 의지했던 사람이 진짜 구원이 될 수 없구나!”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이제 믿고 의지하며 바라볼 대상은 누구 밖에 없는가? 하나님 밖에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만이 자신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임을 알았고, 그래서 절망 가운데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하나님께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며 나아갔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 다윗의 깨달음을 기억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어려움이 찾아올 때 먼저 인간을 바라보지 않길 바랍니다. 힘이 있는 사람을 먼저 의지하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있지 않습니다. 인간이 가진 힘에도 있지 않습니다. 지금 코로나가 우리에게 겪게 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이 그렇게 의지하던 돈과 권력과 과학과 의학의 힘이 너무도 미약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런 것들이 진짜 구원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사람에게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우리의 최고 행복인 줄로 믿습니다. 이 힘겨운 시기에 이 믿음을 굳건하게 다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기도제목:

1.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는 줄로 믿사오니,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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