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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6 - 주일오후찬양예배 설교문(시편37편)

Author
숭실교회
Date
2020-08-16 12:29
Views
5590
악인과 의인의 최후

본문말씀: 시편 37편

오늘은 시편 37편을 함께 나누는데요. 주중에 시편 37편을 묵상하면서, 제 자신이 먼저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37편 역시 다윗의 시편인데요. 내용을 볼 때에 지혜 시편 혹은 교훈 시편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저와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신앙적 지혜 혹은 교훈이 있어서 시편 37편을 노래한 것입니다. 제가 이 시편을 묵상하면서, 이 시편을 통해 다윗이 들려주고자 하는 지혜 혹은 교훈의 내용들을 더 잘 이해하려면, 시편 73편과 연결하여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편 73편은 아삽의 시편입니다. 아삽은 레위인이었고, 찬양대의 일원으로 성전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로 생각하면 찬양대 지휘자나 대장 정도 되는 인물이었습니다. 아삽이 시편 73편을 어떤 상황을 통해서 적게 되었냐면요? 73편 2절과 3절만 읽어드리겠습니다.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넘어질 뻔하였다. 미끄러질 뻔하였다.”는 말씀은 믿음의 일에 있어서 시험이 들 뻔 했다는 뜻입니다. 시험에 들을 뻔 했던 이유는 세상을 바라보니까 악한 사람이 잘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보면서 시기하고 질투하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원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으로서 힘이 들었던 겁니다. 그런 상황을 통해서 아삽은 “하나님 앞에서 악인의 최후는 멸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부러워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다윗이 37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의 시작이 이와 유사합니다. “하나님! 제가 세상을 바라보니까 악인이 의인보다 잘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너무 속이 상합니다. 이래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요즘 잠간씩 다윗과 유사한 생각이 드는 때가 있습니다. TV를 보면 코로나와 장마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런데 지도자들을 보면, 서로 책임을 회피하며 다툽니다. 그 중에는 일반 백성들이 일생을 모아도 가질 수 없는 좋은 집을 가진 지도자도 있습니다. 사실상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화가 나서 “하나님! 좀 그렇지 않습니까?”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시편 37편이 저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상황을 경험한 인생에게 주는 지혜 혹은 교훈이 시편 37편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편을 통해 다윗이 주는 4 가지 지혜 혹은 교훈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각각을 간단간단하게 나누겠습니다.

(교훈1) “악을 행하는 사람들 때문에 불평하지도 말고 시기하지도 마십시오.”라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시면,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라고 말씀하고, 7절과 8절을 보시면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고 말씀합니다. “악한 자들로 인해서 불평하지 말라.”는 말씀은 악한 자들이 잘 되는 모습을 볼 때에, 하나님께 불평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선하시니까, 악한 사람이 잘 되게 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악한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 이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불평하면서, 그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지 말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의한 자들을 시기하지 말라.”는 말씀은 불의한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말씀이에요. 불의한 사람들이 막 부자가 됩니다. 좋은 아파트에 살고요. 좋은 차도 끌고 다니고요. 우리가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싶어 하는 것을 다 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지라도 부러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이에요.

(교훈2) “악한 사람들이 잘 되는 것에 대하여 불평하지도 말고 부러워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라고 권면하냐면요? 그런 악한 사람들의 삶을 본받지 말고, 전혀 다른 삶을 살라고 교훈합니다. 먼저 12절을 보십시오.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그를 향하여 그의 이를 가는도다.” 또 14절을 보십시오.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겨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악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에요.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의인,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을 해하는 일을 너무도 쉽게 꾸미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 잘 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런 사람들로 인하여서 불평도 하지 말고, 부러워하지도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라는 겁니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나요? 37편에 보면, 다윗이 악인들과는 전혀 다르게 사는 여러 가지의 모습을 간단, 간단하게 교훈하고 있어요.
(1) 3절을 보시면 “여호와를 의뢰하고(신뢰한다)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라고 말씀하므로, 악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선을 행하며 살라고 교훈하고요.
(2) 4절을 보시면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여호와께서 주시는 기쁨을 충분하게 누리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고 말씀하므로, 악인들이 잘 되는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삶을 살라고 교훈합니다.
(3) 5절을 보시면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악인들과 같이 자신의 꾀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라는 말씀이고요.
(4) 7절에는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악한 자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참고 인내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씀이고요.
(5) 27절에는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악한 사람들과 같이 악을 행하지 말고 오히려 선을 행하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6) 34절을 보시면 “여호와를 바라고(기대하고 기다린다. 미래의 도우심을 기대하면서)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생명의 길이고, 결국에는 악인은 망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교훈입니다.
결국 악인들이 잘 되는 것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악인들을 부러워하지도 말고, 오히려 악인들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악인의 길이 결국에는 멸망의 길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 생명의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올 것이라는 교훈입니다. 그러니 인내하면서 의인의 길을 걸어가라는 말씀입니다.

(교훈3) 다윗의 세 번째 교훈은 “왜 악인에 때문에 불평하지 말고, 그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가? 다시 말해,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한 것같이 보일지라도, 왜 의의 길을 걸어야 하는가? 그것이 힘이 들지라도 왜 인내하면서 견디면서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가?”입니다. 기 이유는 악한 자와 의로운 자의 최후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악한 자가 지금 볼 때에는 잘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최후는 멸망입니다. 악한 자가 판치는 세상에서 의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의로운 길의 마지막은 행복과 기쁨입니다. 그래서 악인의 길이 아니라 의인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몇 구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1) 9-11절에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을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는 말씀하고, (2) 18-20절에는 “여호와께서 온전한 자의 날을 아시나니 그들의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그들은 환난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매 기근의 날에도 풍족할 것이나, 악인들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들은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가 되어 없어지리로다.”고 말씀하며, (3) 22절에는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끊어지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조금씩 다르게 표현하고 있지만 결론은 동일하고, 아주 단순합니다. “악인의 최후는 멸망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땅을 차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모든 안전한 생활과 행복의 기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에게 주신 공통적인 약속이 “네 후손들에게 땅을 주리라.” 그것이었습니다. 그 약속을 기억하셔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주시면서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히브리인이라고 하잖아요. 히브리의 의미가 “이방인, 나그네”라는 뜻입니다. 땅이 없이 떠도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그랬습니다. 정착하여 살 땅이 없어서, 서러움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삭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랄 백성 가운데 살았습니다. 샘만 파면 블레셋 백성이 와서 샘을 막아버렸습니다. “왜 우리 땅에 와서 사냐? 너의 땅으로 돌아가라.”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을 돌아갈 자신의 기업이 없었고, 그래서 계속해서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니며 서러움을 당해야 했습니다. 자기 땅이 없어서 당하게 되는 설움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땅을 얻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최고의 안전한 생활의 기반과 행복의 기초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도 유사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내 집을 마련하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집이 없는 사람들이 그래서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많은 서러움을 경험합니다. 요즘 부동산 문제로 수많은 국민이 불안을 표현하며 분노하는 마음을 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결혼 전에 하나님께 아들 둘을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같은 성별을 가져야 둘이 잘 놀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제가 운동을 좋아하니까, 아들들과 잘 놀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두 아들을 주셨잖아요. 가끔은 “내가 기도를 잘못 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두 아들만 생각하면, 앞이 깜깜할 때가 있어요. 현실적으로 두 아들이 결혼하면, 집을 마련해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농담으로 “아빠가 은퇴하기 전에 결혼해라. 그리고 사택에 들어와 살아라. 아빠, 엄마가 안방도 내어주겠다.”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제 집을 마련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기쁨과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우리교회 와서 제일 기뻤던 때가 언제인지 아시나요? 오니까 교회재정 전체가 마이너스 몇 억입니다. 그 가운데는 담임목사 사택을 얻기 위하여 전세 자금으로 빌린 금액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3차례를 이사를 다녀야 했습니다. 불편했습니다. 그러다가 성도 여러분이 협력을 잘 해주셔서 사택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이사를 다니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때 정말로 기뻤습니다. 땅을 주신다는 것이 그래서 복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땅은 단순히 지상에서의 땅 뿐 아니라, 조금 후에 보겠지만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도 기업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최후와 의인의 최후는 너무도 다릅니다. 악인은 멸망이고, 의인은 행복입니다. 그러니 악인의 길을 걷지 마시고, 의인의 길을 걸으십시오. 이것이 다윗이 주는 교훈입니다.

(교훈4) “악인의 최후는 멸망이다. 그러나 의인의 최후는 땅을 차지하는 것이다. 최고의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라고 교훈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여전히 악인이 잘 사는 것 같고, 선하게 살려는 사람이 힘이 드는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악인의 최후는 멸망이고, 의인의 최후는 행복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가?”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다윗의 교훈을 담은 대답이 27절로 29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니,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 27절과 29절에서 공통적으로 악인은 망하고 의인은 영원히 산다고 말씀합니다. 조금 전에 함께 나누었듯이 악인의 최후와 의인의 최후는 완전히 대조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밝히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을까요? 28절이 답입니다. 어쩌면 시편 37편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일 수도 있습니다. 28절을 원어로 보면, “키”라는 접속사가 사용되고 있는데 “왜냐하면”이라는 이유를 뜻하는 접속사입니다. 그러니까 28절은 왜 악인의 최후는 멸망이고, 왜 의인의 최후는 영원히 사는 것인가? 그러므로 의인은 왜 영생의 복락을 누리는가? 그 이유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정의를 사랑하셔서 성도는 (의인은) 버리지 않으시고 보호해주시지만, 악인은 끊어버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정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악인은 멸망시키시고 의인은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인의 최후는 멸망이고, 의인의 최후는 땅을 차지하는 것, 영생하는 복락입니다. 여기서 정의라는 말의 원어는 “미슈파트”입니다. 이것은 법적인 정의입니다. 법은 무엇을 하나요?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갈라 판결하는 것입니다. “미슈파트”는 그래서 “재판 혹은 심판”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정의의 하나님께서는 재판 혹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선한 자와 악한 자,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그 사이를 구분하여 재판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선한 자와 의로운 자에게는 영생의 복을 주십니다. 반면에 악한 자와 불의한 자에게는 “지옥의 형벌”로 심판하십니다.

결국 시편 37편에서 다윗은 “정의의 하나님”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 그것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특히나 현세적인 관점이 아니라,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그것을 결단하라는 것입니다.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니,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온갖 악과 불의를 행하더라도 현세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정의와 심판을 믿으면,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면 악한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기뻐하시는 선한 길, 의로운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미 답은 주어져 있지요? 의로우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악한 자를 부러워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의로우신 하나님을 믿고 오직 의의 길을 걸어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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