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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며 실천하는 교회입니다

2020.05.24 - 오후예배 설교문(시편25편)

작성자
숭실교회
작성일
2020-05-24 12:31
조회
4275
사하소서!

본문말씀: 시편25:4-11

오늘은 시편 25편의 말씀을 함께 생각하는데요. 한 가지 엉뚱한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고 싶으신 분 혹시 계신가요? 고난 받기를 좋아하시는 분 혹시 계시나요? (진짜 엉뚱한 질문이지요?) 당연히 고난을 받기를 원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 고난 받기 좋아하니까, 고난을 주세요!” 그러는 사람이 있다면, 저 사람 제 정신인가?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인간은 누구나 당연히 고난당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고난이 때때로 우리에게 유익이 될 때가 있다는 겁니다. 저는 이러한 고난을 섭리적 고난이라고 부르는데요.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유익을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든 고난이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러한 섭리적 고난의 예를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요셉이 그렇습니다. 참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아버지 야곱에게 참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형들이 그것을 시기해서 억울하게 애굽으로 팔렸습니다.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인정을 받아서 종들 가운데 으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했고, 그것을 거부하였습니다. 옳은 일을 했는데, 모함을 받아서 감옥에 2년 이상을 억울하게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애굽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여 주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 고통의 기간이 13년이었어요. 그것도 억울한 고통의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요셉의 신앙고백입니다. 창세기 45장 7절과 8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고통이 하나님이 주신 고통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주어진 고통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요셉 자신이 당한 고통은 오히려 큰 유익이 되는 고통이었다는 고백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요셉과 같이 거창하지는 않아도 여러 성도님들을 보고 “고통이 때때로 유익이 되는구나! 하나님의 섭리적 고난이 있구나!”라는 사실을 목격하였습니다. 가장 많은 경우가 어떤 경우냐면요? 고난을 통해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는 때입니다. 소위 말해서 잘 나갈 때는 자신을 믿고 교만합니다. 그러다가 고난의 일이 다가옵니다. 그러면 자신이 얼마나 교만했는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가? 그것을 깨닫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무릎 꿇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어떤 분은 한때 신앙이 뜨거웠어요. 그런데 세상의 일이 바쁘다. 몸이 피곤하다. 그런 핑계로 신앙생활이 게을러졌어요. 그러다가 고난의 일이 닥쳤습니다. 그 고난 앞에서 자신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고는 회개하면서, 예전에 가졌던 열심을 회복하는 겁니다. 이런 경우에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이 됩니다. 아주 조심스러운 이야기인데요. 요즘 우리교회에 여러 환우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한결같이 하시는 말씀이 고난을 통해서 더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는 거에요. 그래서 오히려 은혜를 발견하는 측면이 있다는 거에요.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고난을 당하는 것은 참으로 싫은 일인데요. 때때로 그 고난이 오히려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때가 있습니다.

오늘 시편 25편을 노래하는 다윗이 그렇습니다. 25편은 다윗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간절한 기도의 시인데요. 다윗이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하는 이유는 지금 너무도 힘든 고통의 현장 가운데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16절과 17절을 보십시오.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고난에서 끌어내소서!” 지금 다윗은 고난을 당하고 있어요. 그래서 마음에 근심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이 고난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우리는 금방 알 수 있습니다. 2절에 보시면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그렇게 기도하고요. 19절과 20절에도 보면 “내 원수를 보소서 그들이 수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하나이다. 내 영혼을 지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그렇게 기도합니다. 지금 다윗이 당하는 고통은 원수들 때문에 당하는 고통입니다. 많은 원수들이 지금 다윗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 영혼을 지켜주소서.” 그러잖아요. 여기서 영혼은 생명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원수들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두려운지 몰라요.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몰라요.

원수로 인해서 당하는 고통도 견디기 힘이 드는데, 이보다도 더 힘든 일은요? 그 고난의 현장 에 있는 다윗이 너무도 외롭다는 것입니다. 고난의 현장에 있는 다윗을 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다윗의 편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아무도 다윗을 위로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냥 혼자 원수들에 둘러싸여서, 생명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에 그래도 누군가 옆에 있어주어서, 조금이라도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면 그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요. 그런데 지금 다윗은 철저하게 혼자입니다. 그러니 더 고통스러운 거에요. 그러나 정말 안타깝게도 다윗의 고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좀 전에 읽었던 16절에서 다윗이 “하나님!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그렇게 기도합니다. “돌이킨다.”는 말은 “눈을 혹은 몸을 돌려서 나를 바라봐 주세요.”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다윗은 견딜 수 없는 죽음의 고통을 맛보고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어요. 1절을 보시면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5절 종반절에 보면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15절을 보시면,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그렇게 고백합니다. 지금 다윗은 전적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하고 계시냐면요? 다윗을 외면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데, 눈길도 주지 않으십니다. 그렇게도 애타게 기도하는데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도 그런 경험 있으시지요? 집에서 부부싸움을 했어요. 사모님이 완전 삐지셨어요. 그래서 눈길도 주지를 않아요. 말을 걸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싸하지요? 사는 기분이 아니지요?) 지금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외면을 당하고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죽을 상황에서 오로지 희망은 하나님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하나님마저 외면하고 계시니까,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요즘 말로 이야기하면 지금 다윗은 고난의 끝장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요? 바로 이 순간에 다윗의 위대한 신앙의 일면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닥쳐온 엄청난 고난의 일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고난을 통해서 중요한 의미를 발견하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고난을 하나님을 원망하는 수단으로 삼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고난을 섭리적 고난으로 만들어가고 있어요. 특히나 다윗은 고난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렇게 생각해본 결론이 무엇이냐면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죄를 하나님께 회개하는 기회로 삼으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갑니다.

7절.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11절.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크오니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하소서!”
18절.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이 구절들에서 다윗은 지금 자신의 고난을 하나님의 섭리적 고난으로 승화시킵니다. 먼저는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지은 죄를 돌아봅니다. 심지어는 젊은 시절에 지었던 죄와 허물도 기억해냅니다. 그리고는 그 죄의 일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회개로 나아갑니다. “하나님! 나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사하소서!”라는 표현의 의미가 굉장히 의미심장한데요. 히브리어 원어로 “나사”라는 말인데, “들어 올리다. 가지고 가다. 그래서 깨끗이 치우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다윗이 “하나님. 나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이 기도는 “하나님. 나의 죄를 다 치워주십시오.”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제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존재, 하나님께서 죄를 다 치워주시면, 죄가 없는 정결한 존재로 살아가고 싶다. 그 소망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게 다윗의 엄청난 믿음이에요. 자신에게 다가온 고난을 통해서 좌절하지도 않고요. 하나님을 향한 원망의 기회로 삼지도 않고요. 오히려 섭리적 고난으로 승화시켜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기회를 삼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다윗에게서 배우는 믿음의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적극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다윗이 가진 믿음이 무엇일까? 하는 겁니다. 회개의 기도로 하나님께 나가는 다윗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확신이 있어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통에서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이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 지금 다윗이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가지고 나아가 “사하소서!” 그렇게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긍휼하심은 불쌍히 여기신다는 말이고, 인자하심은 “헤세드”, 사랑하심입니다. 제가 가끔 말씀드리는데 긍휼하심과 인자하심, 둘 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긍휼하심이라는 말에 늘 은혜를 받아요. 어원이 “레헴”이에요. 그 기본뜻이 우리의 신체의 일부에요. 남자들은 없고, 여자들만 있어요. 아이를 잉태하는 “태”에요. 저는 가끔 집사람이 아이들을 대하는 것을 볼 때에, 10달 가까이를 자신의 배속에 아이를 가지고 있던 여자들과 남자들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요. 그래서 어쩌면 엄마가 아빠보다 자녀를 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전에 한번 말씀드렸지요? 공공의 적이라는 영화 1편을 보세요. 자식이 망나니에요. 돈 때문에 복면을 하고는 아빠, 엄마를 무참하게 살해합니다. 그런데 엄마는 그게 아들이라는 것을 직감해요. 그래서 죽어가면서도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 그 망나니 같은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아들의 손가락에서 떨어진 손톱을 주어먹습니다. 이게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이에요. 그게 불쌍히 여긴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다윗을 향한 마음이 그렇고요. 우리를 향한 마음이 그래요. 다윗은 자신의 죄를 돌아보면서, 자신이 망아니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럼에도 염치불구하고, 그 죄를 들고 하나님께 나가서 “사해주세요.” 기도하고 있어요. 무슨 믿음이 있어서 그럴까요? 자신이 아무리 망나니 같아도, 긍휼하신 하나님, 인자하신 하나님이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 저와 여러분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설교문을 맺습니다. 때때로 우리에게는 고난이 찾아옵니다. 참으로 힘이 드는 일입니다. 요즘 코로나 19가 우리를 얼마나 힘이 들게 만드는지 몰라요. 너무도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에라도 오늘 다윗처럼 고난 앞에서 그저 좌절하지도 마시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오히려 다윗처럼 고난을 섭리적 고난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길 바랍니다.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음성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고난이 내게 은혜였다.” 그렇게 놀라운 믿음을 고백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코로나 19가 지금은 우리를 너무도 고통스럽게 하고 있지만, 언젠가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니 다윗과 같이 이 고난의 때를 믿음으로 이겨내며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기회로 삼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하나님! 고난 가운데 있는 우리 성도님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전체 2

  • 2020-05-26 19:32
    곤한 영혼에 큰 위로가 되는 말씀 감사합니다.

  • 2020-06-03 15:48
    작은 자의 설교문이 영적으로 도움이 되셨다니 감사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너무도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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