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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며 실천하는 교회입니다

2020.05.03 - 오후예배 설교문(시편19편)

작성자
숭실교회
작성일
2020-05-03 15:01
조회
5285
하나님의 영광! (2020. 5. 3. 주일오후예배)

말씀: 시편 19:1-14

시편 19편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시편입니다. 대표적으로 유명한 C.S. 루이스는 자신의 “시편묵상집”에서 “시편 19편은 모든 시편 중에서 가장 위대한 시편이고, 세상 최고의 서정시”라고 말합니다. 하이든의 고향곡 천지창조가 있는데, 그 고향곡의 성경적 배경이 이 19편이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심지어 임마누엘 칸트라는 유명한 철학자는 시편 19편에 비추어서, “나의 영혼을 거룩한 경외심과 끊임없이 솟구치는 경탄으로 채워 주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육적 존재인 우리를 실제로 압도하는 별이 총총한 밤하늘의 광경과 지적 매체로서의 우리를 무한히 존엄한 위치로까지 끌어올려 주는 도덕법이다.”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경외와 경탄의 대상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의 광경이고 다른 하나는 도덕법, 그러니까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율법,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겁니다. 사실 칸트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시편 19편에서 다윗은 인간이 감탄할 수밖에 없는 두 가지 대상이 있다고 노래하는데요. 첫째는 자연만물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두 대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 바꾸면, 우리 인간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 수 있도록, 이 두 대상에 자신을 계시하여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연만물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일반계시라고 말씀하고, 말씀(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특별계시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 시편 19편이 엄청난 시편인 것이 분명합니다.

이 시편 19편 말씀은 세 단락으로 구분이 가능합니다. 첫째, 1절에서 6절까지인데요. 자연만물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말씀합니다. 둘째는 7절에서 10절입니다. 말씀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자기계시입니다. 마지막으로 11절에서 14절인데요. 자연만물과 특히 말씀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다윗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간구하는 겁니다. 각 단락을 잠시 살피면서, 우리에게 주는 신앙의 교훈을 새겨 보겠습니다.

첫째 단락은 자연만물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자기계시입니다. 왜 자연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까요? 하나님께서 자연만물을 만드신 창조자시기 때문에, 자연만물이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솜씨를 드러내는 겁니다. 1절을 보십시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하늘과 궁창은 성경에서 거의 동의어로 쓰입니다. 우리가 밖에 나가면 보는 하늘입니다. 그 하늘이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고, 하나님께서 그 손으로 만드신 대상입니다. “영광”의 어원을 보면, “무게가 나간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은유적으로 쓰이면 “중요하다. 위대하다.”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어떠한 위대하심일까요? 손으로 지으신 일, 그러니까 창조자의 위대하심을 드러낸다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구절에 보면, 낮과 밤도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고요. 하늘에서 작열하는 태양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제가 개인적으로 1절에서 6절까지의 말씀에서 제일 재미있게 읽은 말씀이 3절에서 4절 전반절입니다.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이게 무슨 말씀이냐면요? 하나님이 지어놓으신 만물이 내는 소리를 우리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 나름도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다윗이 노래하기를 그 소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라는 것입니다. 전 우주만물이 그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사를 보면 위대한 영성가들이 있는데요. 신기한 것이 있습니다. 그 자연만물이 내는 소리를 듣는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는 모든 자연의 대상이 내는 소리를 듣고 대화를 했다는 겁니다. 심지어 타고 있는 불꽃과도 대화를 나누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좋으냐면요? 제가 언젠가 “감탄이 신앙의 일이다.” 그렇게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어놓으신 만물을 보고, 하나님의 위대하심 때문에 감탄하는 겁니다. 지난주에 우리 교회가 약 두 달만에 예배당 예배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때에 제가 개인적으로 참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봄 전경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개나리, 벚꽃, 겹벚꽃, 철죽이 연이어 핍니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성도님들이 교회 앞마당에 피는 꽃들을 보지 못하셨습니다. 목회자들이 보면서 “저 꽃들이 다 피고지기 전에 성도님들이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아쉬워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예배를 다시 시작하였을 때, 겹 벚꽃이 한창이었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보시고는 감탄을 하셨습니다. 어르신들은 너무도 좋으셔서 예배가 끝나고 함께 사진을 찍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쁘게 만드신 것이 하나님의 솜씨구나!” 그렇게 감탄하는 것이 곧 신앙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만물의 찬양소리를 듣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솜씨를 고백하면서 감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둘째, 단락은 율법, 하나님의 말씀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겁니다. 자연만물과 말씀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자연만물이 내는 소리는 듣지를 못하잖아요. 그래서 이해하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말씀은 이해가 가능해요. 하나님께서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좋은지 압니다. 7절로 9절에 보니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을 소성케 합니다. 우리 영혼을 살아나게 하는 생명의 말씀이라는 거지요. 또 지혜롭게 합니다. 지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아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말씀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하나님에 대하여 경외하게 만듭니다. 또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우리에게 바른 것을 알게 해주고, 바른 것을 지키게 하니까 기쁜 겁니다. 또 눈을 밝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두움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밝은 것을 보게 합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고 의롭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분이니까, 말씀도 영원합니다.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이니까, 그분의 말씀도 의롭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면에서 우리를 유익하게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뭐라고 고백하냐면요? 10절에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자연만물을 보고는 무엇을 하면 좋겠다고 제가 말씀드렸나요? 네, 감탄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다윗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모하는” 겁니다. “사모한다.”는 말은 “몹시 바라다. 갈망하다. 심지어 탐낸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탐스럽다.”고 느꼈는데, 거기에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자. 선악과를 탐내서는 안 되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탐을 내자.” 그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우리 영혼에 유익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 부어주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말씀을 사모하는 자에게 그 말씀의 은혜를 주시는 겁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바울이 베뢰아 지방에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거기에 복음의 역사가 무수하게 일어납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11절에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이 차이를 만들었나요?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붙잡고 날마다 상고하였다. 연구하고 묵상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의 은혜, 복음의 역사를 부어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11절로 14절인데요. 하나님의 자기계시 앞에서, 특히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다윗이 결단하고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먼저 11절은 말씀 앞에 선 다윗의 결단입니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므로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우선은 말씀을 통해 경고를 받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가 무엇인지? 그리고 죄를 범하면, 하나님의 분노를 산다는 것. 이런 것을 아는 겁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사모하면, 그로부터 경계를 받아서 죄로부터 멀리하게 된다는 것. 그것을 아는 겁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이 곧 복이 있는 길. 행복한 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겁니다. 그러니 다윗이 하나님 앞에 무엇을 결단하면서 기도하냐면요? 하나님! 제가 말씀대로 순종하겠습니다. 그렇게 결단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하는 거에요.

그 첫 번째 기도가 무엇이냐면요? 죄를 짓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것입니다. 12절은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비자범죄라고 하나요? 부지불식간이 짓는 죄가 없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고요. 13절은 고의로 죄를 짓지 않게 해주십시오. 자범죄, 혹은 고범죄입니다. 그 죄를 짓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는 겁니다. 다윗의 아주 겸손한 고백입니다. 예전에 선배 목사님들이 “죄에 대하여 자신하지 말아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나는 목사니까, 죄를 범하지 않아. 자신 있어.” 혹은 “나는 말씀에 철저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남들이 범하는 죄를 범하지 않아.” 그렇게 자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살다보니까 그 말씀이 참 지혜로운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나도 모르게 욕심이 생길 때가 있고요. 분노하여서 사람을 미워할 때가 있고요. 내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싶을 때도 있고요. 그래서 죄에 대하여 자신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가 인간인 거에요. 다윗은 이것을 잘 알았습니다. 가장 평화의 시기에 정욕에 끌려서 바세바와 죄를 범하고, 그것을 감추려고 바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죄에 대해 자신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께 “하나님. 제가 부지불식간이든, 아니면 고의로든, 죄를 범하지 않도록 저를 지켜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렇게 겸손한 기도로, 죄에서 멀리하는 힘을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의 두 번째 기도는요. 14절입니다.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합니다.” 이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말을 합니다.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합니다. 다윗은 그 많은 말과 그 많은 생각이 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받으실만한 말이 되고 생각이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저는 다윗의 이 기도를 묵상하면서, 다시 한 번 다윗이 얼마나 놀라운 신앙인이었는지,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하나님 앞에 얼마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애쓴 사람이었는지 깊이 깨달았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하루에 하는 말들 가운데 예쁘지 않은 말이 많아요. 저 스스로를 돌아보아도 그렇습니다. 쓸 데 없는 소리를 하는 때도 있고요. 남을 흉보는 말도 하고요. 남에게 상처 주는 말도 하고요. 그리고 생각으로는 더할 수 있습니다. 생각은 남에게 드러나지를 않잖아요. 그러니까 겉으로는 아닌 척 하면서 생각으로는 나쁜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어요. 겉으로는 괜찮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욕을 할 수도 있어요. 겉으로는 사랑한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미워할 수 있어요. 겉으로는 웃으면서, 생각으로는 기분 나빠할 수 있어요. 겉으로는 겸손한 척하면서, 생각으로는 교만할 수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 다윗이 내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 생각이 하나님께 열납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놀라운 삶의 결단이 담긴 기도인지 몰라요. 모르겠어요. 사실 저도 자신이 없어요. 그런데 저와 여러분이 다윗처럼 우리 입술의 모든 말과 마음의 생각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말과 생각이 되도록, 애써 보시면 좋겠습니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애써보십시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한 주 되기 바랍니다.

기도제목:
-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사는 인생 되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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