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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며 실천하는 교회입니다

2020.03.29 - 주일 오후 예배 설교문

작성자
숭실교회
작성일
2020-03-29 12:24
조회
3199
전심으로!

본문말씀: 시편9:1-6

(할렐루야! 주께서 저와 여러분을 강건하게 지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7~8년 전에 세미나 참석을 위해서 엘에이에 있는 풀러신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에 제가 참으로 존경하게 된 유명한 교수님을 한 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3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는데요. 이분의 성함이 글렌 스타센입니다. 저는 이분의 삶과 신학을 통해 여러 교훈을 얻었는데요. 상당한 부자셨습니다. 부모님이 성공한 사업가셨기 때문에, 상당한 유산을 받으셨답니다. 억만장자셨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평화주의자셨고, 하나님께서 지어놓으신 환경을 다시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셨기 때문에, 자동차를 사용하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셨습니다. 신앙과 삶이 일치된 분이셔서 존경이 절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타센 교수님이 지으신 책 두 세권을 사서 읽어보았는데요. 그분의 신학 사상 중에서 제가 인상적으로 가르침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구원하시는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분명하지요?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 때문에 저와 여러분을 죄의 노예로 두지 않으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하시는 사랑을 어떻게 이루시는가에 있습니다. 스타센 교수에 따르면 하나님은 불의한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의와 정의의 길을 통해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이루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랑은 결국 공의로운 사랑, 혹은 정의로운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랑은 공의로운 사랑”이라는 스타센 교수의 주장은 “하나님은 죄를 인정하시지 않는다. 그래서 공의를 통해 죄를 없애시므로 구원을 이루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라는 뜻입니다. 자. 성도 여러분의 성경적 지식을 가지고 이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짓습니다. 성경에서 계시하는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면 어떻게 하실까요? 예를 들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의 죄를 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시나요? 그냥 넘어가시나요? “그래도 내가 너희를 사랑하니까 괜찮아.” 그러시나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분노하십니다. 그 분노에 따르면, 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죄인에게 사는 길을 주셨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 속제의 제물을 들고 나옵니다. 양이나 염소나 소를 가지고 나옵니다. 그리고 그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이 그것을 속죄의 제물로 받으시고 죄인을 용서해주십니다. 본래는 누가 심판을 받고 죽어야 했나요? 죄를 지은 사람이 심판을 받고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진노를 짐승에게 대신 행하시고 (그러니까 자신의 공의로운 심판을 짐승에게 대신 행하시고), 죄인은 용서해주시고 의롭게 하셔서 구원해주십니다. 신약성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엄청나게 바뀐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위한 속죄의 제물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속죄의 제물이 짐승이 더 이상 아닙니다. 누가 속제제물, 대속제물이 되셨나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십자가에 대속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누가 죽어야 했나요? 사실은 죄인인 우리가 죽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게 하셨습니다. 이사야 53장 4절에 “그는 우리의 질고, 우리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2절에 “(예수님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그렇게 속죄의 제물이 되시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공의, 정의를 만족시켜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정의로운 심판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임한 것입니다. 그 대신에 누가 살았나요? 저와 여러분이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을 이루시기 위해서, 공의와 정의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공의와 정의를 행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대속제물 되신 예수님에게 죄를 담당시키시고 그 죄에 대하여 공의와 정의를 행하시므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내어놓고 예수님만 믿으면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랑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모습은 실제세계에도 적용됩니다. 실제세계에 어떻게 적용되냐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이 악인에게 억압을 당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악인으로부터 고통당하는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악인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악인의 죄를 드러내시고, 그 죄로 인하여 악인을 심판하십니다. 그렇게 하시므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해주십니다. 저는 오늘날 뉴스에서 그러한 모습을 너무 많이 보아요. 오늘날 힘이 있는 사람, 물질이 있는 사람이 악한 일을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나요? 죄악을 드러내십니다. 공의의 심판을 받게 하십니다. 그래서 고통당하는 사람을 위로하시고 구원하십니다. 예를 들어 요즘 며칠 동안에 N번방 운영자가 우리나라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 악한 일을 감추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나요? 악한 일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그 죄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이렇게 악을 드러내고 벌을 받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약한 자를 도우시기 위해서, 불의한 자의 죄를 드러내시고 심판을 받게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공의로운 재판장, 혹은 의로우신 재판장이라 말씀합니다. 특히 시편에서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십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시편 7편 11절에서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제가 결론적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전심으로”라고 정했지만, 사실 오늘 함께 나눌 시편 9편의 말씀의 핵심도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십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편 9편의 저자 다윗이 고백하는 믿음의 핵심입니다.

먼저 1절을 보세요.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설교문 제목인 “전심으로”는 말이 등장하는데요. 잠시 후에 나누기로 하고요. 1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고, 그 감사한 일 때문에 2절에 보시면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라고 선언합니다. 다윗은 무엇 때문에 감사하고, 무엇 때문에 찬송하는 것일까요? 1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기이한 일들” 때문에 감사하고 찬송합니다. 다윗으로 하여금 감사하고 찬송하게 하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기이한 일들은 다윗을 심한 압박과 고통에서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 일입니다. 이 구원의 놀라운 일을 경험하기 전에 다윗의 형편을 알 수 있는 기도가 있어요. 13절과 14절을 보세요.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다윗은 한때 사망의 문, 곧 죽음의 세계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 고통은 다윗을 미워하는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을 고통스럽게 한 미워하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정체는 모릅니다. 이 사람들은 3절과 6절에 보면, 원수들이고요. 이 원수들은 5절, 15절, 20절에 보면 이방 나라들이고요. 또 5절과 16절과 17절을 보시면, 악인들이에요. 이들 때문에 다윗은 곧 죽을 수도 있는 공포와 고통을 경험했어요. 그 자리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하나님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주시면 제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다윗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기도를 통하여 약속한 대로 이 시편 9편을 지어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고, 찬송합니다.

이 감사와 찬송의 시편에서 다윗은 자신에게 놀라운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느냐면요? 의로우신 재판장으로 고백합니다. 4절에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7절과 8절에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앉아 계시는 하늘 보좌를 심판의 보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앉아계시는 하나님은 재판장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어떤 재판장이신가? 공의와 정직으로 재판하시는 하나님, 그러니까 의로우신 재판장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재판장이 되십니다. 안타깝게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무엇을 말해주나요? 인간 재판장이 아무리 똑똑하다고 하더라도 100% 신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00% 정직하고 정의로운 재판장이라고 믿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런 재판장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100% 신뢰할 수 있는 재판장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의롭게 재판해주셨고, 그래서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을 “가르기 선수. 나누기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씀이냐면요? 성경에서 재판, 혹은 심판이라는 말의 의미가 “가른다. 나눈다.”는 뜻입니다. 성경적 의미로 재판 혹은 심판은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가르는 일입니다. 죄 없는 사람과 죄 있는 사람을 나누는 일입니다. 선인과 악인을 나누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냐면요? 이 두 부류의 사람을 정확하게 가르시고 나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억울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재판을 하신다. 심판을 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이중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는 한편으로 의로운 자는 구원해주시고,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 의로운 자를 억압하는 악인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공의의 사랑입니다. 악한 자에게 공의의 심판을 행하심으로써, 의로운 자를 구원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9편에서 다윗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가르고 나누시는 하나님의 이중적인 행동을 잘 그려놓았습니다.

먼저 9절과 10절에는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오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2절에는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18절에는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다윗에 따르면 “하나님은 자신을 의지하는 자. 자신을 찾는 자. 가난하고 궁핍하므로 인하여 고통을 받으면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 그래서 하나님만이 살 길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의로운 자를 잊어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위한 요새가 되어 주십니다. 그들을 도와주십니다. 그들을 구원해주십니다. 그들을 사랑해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반면에 3절에는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5절과 6절에는 “이방 나라들을 책망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나이다. 원수가 끊어져 영원히 멸망하였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그리고 15절로 17절에는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16절에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이 말씀이 가장 중요한데요. 표준새번역이 이 구절의 의미를 아주 잘 번역해 놓았습니다. “주님은 공정한 심판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시고.” 무슨 말씀이냐면요?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악을 알아요. 그 죄를 알아요. 그래서 그것을 심판하십니다. 악인이 심판을 받아 죽음의 세계, 스올로 가게 하셨어요. 이렇게 악인을 심판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자신이 어떤 분이신가를 드러내셨습니다. 어떤 분이신가요?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의로우신 재판장이십니다. 그래서 악인은 갈라서 심판하시고, 그 악인에게 고통당하면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하던 의인은 구원하시고 사랑해주십니다. 이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전심으로”라는 말씀을 잠시 생각하면서 말씀을 맺겠습니다. 저는 이 한 마디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신앙이 “전심 신앙”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 전심 신앙이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신앙의 핵심입니다. 신명기 6장 5절에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그러니까 100%로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전심 신앙의 핵심내용입니다. “전심”의 히브리어가 “콜 레브”에요. “콜”은 “전부, 모두 다. 그런 뜻이고요.” “레브”는 “마음”이에요. 그러니까 전심은 “마음 전부. 한 곳도 빠짐없이 전부.” 그런 뜻이에요. 다윗은 지금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자신의 마음을 다하여, 전부를 드려” 감사하고 찬송한다는 선언하는 겁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주께서 베푸신 “기이한 일.”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시고 구원해주신 사랑. 그것을 기억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기억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처럼 전심으로 감사하고 찬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잊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수없이 그랬던 것처럼 배은망덕하게 되는 겁니다. 인간사도 그렇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기억하면 감사하고 효도하는 겁니다. 그러나 잊어버리면 불효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처럼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자신의 공의를 위하여 독생자까지도 십자가에 내어주시므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해주신 그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면서, 오늘 비록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때에도 전심으로 감사하고, 전심으로 찬송하고, 전심으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1. 의로우신 재판장이 되시는 하나님.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이 고통의 상황에서 저희를 구원해 주옵소서!
2. 우리로 하여금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므로 다윗처럼 감사하고 찬송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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