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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6 - 주일오후찬양예배 설교문(시편34편 후반부)

작성자
숭실교회
작성일
2020-07-26 13:10
조회
1769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

본문말씀: 시편 34편 후반부

(주보에는 시편 35편을 공지해 드렸는데, 지난주에 시편 34편 후반부 말씀을 나누겠다고 예고해 드려서 시편 34편 말씀을 다시 한 번 나누겠습니다.)

지난주에 34편을 나누면서, 이 시편이 기록된 배경을 말씀드렸습니다. 부제에 보면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고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블레셋의 한 지파인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피하여 갔습니다. 그러나 신하들이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사람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칭송했던 사람이므로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때 다윗은 미친 척 하면서 그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너무도 두려웠었고, 하나님께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셨고, 다윗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돌아보면서, 다윗이 시편 34편을 적은 것인데 우리에게 두 가지 신앙의 교훈을 들려줍니다.

지난주에 나눈 대로 첫 번째 교훈은 “믿는 사람은 찬양하는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 은혜에 감사하며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양에 대한 세 가지 교훈을 새겼습니다. 첫째, 찬양은 항상 하는 것입니다. 1절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둘째, 찬양의 내용과 목적은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는 데 있습니다. 2절에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셋째, 찬양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찬양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3절 말씀에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이렇게 세 가지 교훈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다윗이 시편 34편 말씀을 통해 주는 두 번째 교훈은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8절과 9절을 먼저 보십시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도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지난주에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간증하면서, 감사하며 찬송을 했습니다. 백성들과 더불어 함께 찬송을 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이번 주에 나누는 말씀을 보면, 백성들에게 연설을 하면서 교훈을 하는 것입니다. 그 교훈의 핵심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시오. 그러면 행복할 것입니다.” 이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윗이 1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행복이므로,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복의 길, 행복하게 사는 길”을 가르쳐준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은 무엇인가? 행복한 삶의 비결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말과 행동에 있어서 악한 것을 버리고 선한 것을 따르는 것입니다. 먼저 13절을 보십시오.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혀나 입술은 다 말을 하는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혀나 입술은 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은 악한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악한 말은 유익을 끼치는 말이 아니라, 해를 끼치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욕을 하고 저주하는 말입니다. 그런 말은 듣는 사람에게 정말로 큰 상처를 주는 말입니다. 저도 지금 생각해보아도, 아주 화가 나는 말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에 제가 너무 말랐잖아요. 그런데 교회 어떤 어른이 “말라서 복이 없게 생겼다.” 그러는 거에요. 지금까지 상처가 되어서, 생각하면 화가 나는 거에요. 혹시 제가 성도 여러분에게 드린 말씀 가운데 혹시라도 상처가 되는 말이 있었다면, 이 시간에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악한 말이 아니라 선한 말을 많이 하십시다. 저주가 아니라 축복의 말을 많이 하십시다. 미움의 말이 아니라 사랑의 말을 많이 하십시다. 힘과 용기를 주는 말을 많이 하십시다. 그래서 우리교회를 아름다운 말의 공동체로 세워 가십시다.

그리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거짓말은 사단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뱀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 먹으면 반드시 죽어.”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뱀이 “아니야. 죽지 않아. 오히려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어.” 그렇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 거짓말에 아담과 하와가 속아서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거짓은 마귀의 것이므로, 거짓을 말하는 사람은 사단에게 속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언젠가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저는 제 자녀들이 거짓말을 하면 정말로 무섭게 혼을 내킵니다. 거짓은 마귀에게 속한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또 거짓말에는 무서운 속성이 있습니다. 한번 거짓말을 하잖아요. 그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서, 또 거짓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거짓말은 꼬리에 또 꼬리를 무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한 거짓말을 진짜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완전히 거짓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기억하십시다. 우리는 진리의 자녀이므로, 거짓말의 사람이 되지 마십시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입니다.

이제 14절을 보십시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13절에서는 말과 관련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14절에서는 우리의 행동과 관련하여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말씀인데요. 사실 그 내용에 있어서는 거의 유사합니다. 우선은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제가 몇 차례 성경에서 악과 선의 기본 개념을 말씀드렸습니다. 악이란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선이란 그 반대로 남을 유익하게,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라는 말씀은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지 말고, 유익을 끼치는 행동, 이롭게 하는 행동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악하게 살지 말고, 선하게 살라는 말씀이나 똑같은 것이지요. 저는 이것이 오늘 세상을 위해 교회가 할 수 있는 빛과 소금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요즘 세상을 돌아보세요. 얼마나 악한 사람들이 많은지 몰라요. 그래서 세상이 너무 강팍해져요. 세상을 사는 것이 너무 힘이 들어요. 누가 이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요? 교회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잖아요. 마태복음 5장 16절,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착한 행실을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선한 행실을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그것을 원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교회도 할 수 있으면, 선한 행실을 많이 하는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장학사업도 잘 되었으면 좋겠고요. 숭실생필품나누기운동도 잘 되었으면 좋겠고요. 말레이시아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사역도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런 교회, 이런 성도들로 살아가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화평을 찾아 따르라.”고 말씀합니다. 화평. 샬롬. 성경에 보면, 샬롬은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모습 가운데 하나이고요. 특히나 이사야서나 미가서(4장 1절에서 3절)에 보면 종말론적인 소망이자, 종말에 이루어질 모습입니다. 또 요한복음 14장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주시기로 약속했던 것도 “평안, 화평”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싸움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화해와 평화를 일으키는 사람이에요.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그렇게 찬송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인을 “피스 메이커, 평화를 이루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요즘 저는 우리나라를 보면서, 정말 걱정이 많은데요. 미안하지만, 정치하시는 분들이 국민들을 다 갈라놓았어요. 보수와 진보로 갈라놓았고요. 북한관련 문제로 갈라놓았고요. 복잡한 외교문제로 갈라놓았고요. 그래서 도대체 마음 놓고 말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점점 더 적어집니다. 조금 말을 잘못 하면 오해가 되고, 싸움이 되는 거에요. 심지어는 한 가정에서도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말을 하면 부모자식간에도 싸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조그마한 나라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거에요. 그래서 교회 안에서부터 서로 화합하고 평화를 이루는 모습이 나타나야 하는 거에요. 그 평화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하는 거에요. 스탠리 하우어워스라는 유명한 신학자가 있습니다. “교회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의 공동체다. 그러한 모습으로 세상의 대안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안교육. 대안사회. 그런 말이 많습니다. “세상은 평화를 이루고 살지 못하니까, 교회가 평화의 공동체가 되어서, 세상에 평화롭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런 주장입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쉽지 않지만, 저와 여러분이 이루어가는 이 숭실교회는 평화의 공동체를 이루어가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어떻게 행복의 길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아가는 인생, 그러니까 말과 행실에서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는 인생, 의로운 자를 인정하시고 악한 자를 인정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15절과 16절을 보시면,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하나님의 눈에 의롭게 보이는 사람이 행복한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선을 행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7절에 보면,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19절과 20절에도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반면에 악인은 어떠한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시고요. 우리 눈에 잘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21절에도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벌을 받으리로다.” 그래서 악인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우리가 이미 나눈 바 있는 시편 1편 6절의 말씀을 다시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여서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의인은 행복합니다. 반면에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바라보시고 판단하시는 데는 중간지대가 없습니다. 오직 둘 중에 하나만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인가? 아니면 경외하지 않는 인생인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인생인가? 아니면 악한 인생인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인생인가? 아니면 불의한 인생인가? 그래서 결국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인생인가? 아니면 합당하지 않은 인생인가? 행복한 인생인가? 아니면 불행한 인생인가?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으로 살아서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행복한 인생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인생, 그래서 행복한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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