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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며 실천하는 교회입니다

2020.07.19 - 주일오후찬양예배(시편34편)

작성자
숭실교회
작성일
2020-07-19 12:04
조회
2486
모두 함께 찬양을!

본문말씀: 시편 34편

한 번은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하다가 김형석 교수가 인터뷰하신 글을 읽었습니다. 김 교수님은 우리교회와도 인연이 특별한 분입니다. 우리 숭실학원 출신으로 살아계신 숭실학원의 역사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게는 개인적으로 대학교 은사 중에 한 분이 되시기도 합니다. 그런 인연으로 숭실학원에도 오셔서, 그리고 우리교회 바른신앙세미나에도 오셔서 귀한 강연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읽은 인터뷰 기사는 196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김 교수님이 쓰셨던 에세이 중에 대표적인 것들을 모아서 2권의 책으로 내신 후에 기자와 인터뷰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 인터뷰 제목이 “100세 철학자 김형석, ‘불행한 경험 손해 아닙니다.’”였습니다. 이 제목을 보고서 “불행한 경험이 어떻게 손해가 아닐 수 있지?” 이런 마음으로 기사를 읽어 보았습니다.

김 교수님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불행한 경험은 손해가 아니다.”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숭실학원은 일제 시대에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자진 폐교하였습니다. 그때가 김 교수님이 중학교 시절이었는데요. 김 교수님 자신도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학교를 1년 쉬셔야 했습니다. 그 고통과 불행의 시간이 김교수님께는 오히려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 김 교수님은 책을 집중적으로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매일 혼자서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도서관에서 문학서와 철학서를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읽으셨습니다. 그때 쌓은 학문적 지식이 엄청난 도움이 되어서, 철학을 공부할 때에 어떤 과목에서는 선생님보다 더 많이 안다고 자부할 정도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100세가 되는 오늘날도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명문장가로, 그리고 수필가로 이름을 얻게 된 것도 이때에 수련한 독서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김 교수님의 인터뷰 결론이 “불행한 경험을 겪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고 봅니다. 고통스럽게 살면 삶이 달라집니다.”라고 말씀이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시편 34편의 말씀을 함께 나누는데요. 오늘 시편도 다윗의 시편입니다. 제가 여러 번 적어드렸지만, 시편을 통해 만나게 되는 다윗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힘을 가진 왕, 모든 부를 누린 사람, 그래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시편에서 만나게 되는 다윗은 끊임없이 시련과 고통을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윗이 이러한 고난과 시련의 시간을 김형석 교수님과 같이 오히려 손해가 되지 않는 시간으로 보냈다는 사실입니다. 그에게 시련과 고통은 정말로 힘든 것이었지만, 그 고통과 불행의 경험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고통과 불행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가는 신앙의 사람으로 성숙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특별히 다윗은 자신의 고난과 불행의 시간을 당할 때마다,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자신의 연약함을 겸손하게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가 오늘도 나누는 수많은 주옥과 같은 시편들을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누는 시편 34편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편을 통해서 다윗은 자신이 고난과 시련의 연단과정에서 깨달은 신앙의 교훈을 우리에게 들려주는데요. 부제를 보시면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이 시편을 짓기 전에 다윗이 얼마나 비참하고 힘든 상황에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단서입니다. 이 상황이 사무엘상 21장 10절로 1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고 소리쳤습니다. 이때부터 사울이 다윗을 심각하게 질투하였습니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죽이려고 했습니다. 결국 다윗이 사울을 피해서 도망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땅에 머물기가 어렵다는 것을 판단하고, 이스라엘의 원수인 블레셋 사람들에게 가서 살면 사울이 자신을 쫓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한 지파인 가드 왕 아기스(부제에는 아비멜렉이라고 적혀 있는데요.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블레셋 백성들은 왕의 칭호를 아비멜렉이라고 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이집트의 황제는 파라오이지요. 그리고 로마황제는 시저이지요. 마찬가지로 블레셋의 왕 칭호가 아마도 아비멜렉이었을 것이란 말입니다.)에게 도망갑니다. “저를 신하로 삼아주시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라면서, 위장전향을 하려 한 겁니다. 그런데 그때 아기스의 신하들이 완강하게 반대를 합니다. “이 사람은 블레셋 사람이었던 골리앗을 죽인 우리의 원수와 같은 사람입니다. 살려둘 수 없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자, 다윗이 크게 두려워합니다. 그때 다윗이 살고자 한 일이 미친 척하면서 침을 질질 흘리고, 대문짝에 몸을 긁어대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은 악령에 사로잡힌 것이기 때문에, 손을 대어 죽이면 그 악령이 자신에게 붙는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스스로 미친 척하는 지혜를 통하여 목숨을 구한 그 순간에 속으로는 어떻게 하고 있었을까요?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지금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를 좀 살려주십시오. 구해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신 겁니다. “미친 체 하자. 그러면 살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다윗의 기도를 듣고 하나님께서 순간적으로 주신 지혜였는지도 모릅니다. 그 결과로 다윗은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시면,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6절도 보십시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성도 여러분. 다윗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또 다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에게 고통과 시련, 불행의 시간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응답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다윗은 중요한 신앙의 교훈 두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찬송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이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시편 34편이 두 개의 장르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시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는 감사시, 혹은 찬송시라고 하고요. 다른 하나는 지혜시, 혹은 교훈시라고 합니다. 전자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찬송하는 내용이고요. 후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 혹은 지혜를 주는 내용입니다. 1절에서 8절 (혹은 10절)까지가 전자의 내용이고요. 9절에서 (혹은 11절에서) 마지막 22절까지가 후자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 설교문에서는 첫 번째 내용,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찬송이라는 다윗의 교훈을 나누고요. 다음 설교문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 혹은 지혜를 함께 나눌 겁니다. 먼저 찬양에 대한 교훈 3 가지를 나눕니다.

첫째, 찬양은 항상 하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1절에 “항상”이라는 말이 두 번이나 나오지요?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두 단어가 다른 말로 되어 있는데요. 뜻은 거의 동일합니다. 둘 다 “중단 없이 계속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믿는 자들은 언제 찬양을 해야 하는가? 항상 중단 없이 계속해서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항상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렇게 하실 수 있나요?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다윗도 항상 중단없이 찬양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원어 문장을 보면 다윗 스스로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나는 송축할 것입니다. 나는 찬양할 것입니다.” 이것을 강조합니다. 학자들의 해석을 보니까, 이게 결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송축하고, 찬양하기로 결심했어. 결코 그 결심을 잊지 않을 거야.” 그런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쉽게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쉽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에 따르면 찬양은 “하나님의 은혜를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겠습니다.”는 믿음의 결단을 담아서 하는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모습이 그런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면, 그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열심히 예배하고 열심히 찬양하고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그렇게 결심해 보지만요. 작심삼일은 아닐지라도, 시간이 갈수록 그 마음을 점점 더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은혜를 점점 잊어버리고 살아가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책망을 받은 에베소 교인들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다시 한 번 다윗처럼 믿음을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절대로 잊지 않는 저와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결단한 믿음으로 가지고 다윗처럼 늘 찬양에 깨어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둘째, 찬양은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이다.” 이 구절을 통해서 다윗은 우리가 드려야 할 찬양의 주제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는데요. 찬양의 주제는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찬양은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후에 읽을 3절 종반절에 보면, “그의 이름을 높이세.”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찬양이 하나님을 자랑하고, 찬양이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이라는 말씀은 우리의 찬양의 대상이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블레셋 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순간 미친 척을 해야 했습니다. 다윗은 스스로 “내가 그 상황에서 어떻게 그 지혜를 생각할 수 있었지? 나는 역시 똑똑한 사람이야.” 그렇게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것이 자신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찬양을 통하여 그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찬양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이요. 그래서 높임을 받고, 자랑의 대상이 되실 분도 오직 하나님뿐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것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찬양을 통해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찬양은 내 감정을 노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찬양의 사람들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셋째, 찬양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이 3절의 말씀이 어떤 구조를 가지냐면요? 다윗이 “나와 함께 여호와를 찬송하세!”라고 선창을 하면, 모든 회중들이 다윗의 말을 받아서, “우리 모두 그 이름을 높이세!”라고 화답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양의 주체가 다윗 개인에서 모든 회중으로 확장되고, 다윗 개인의 찬송이 모든 회중의 합창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 개인이 경험한 은혜와 신앙고백이 모든 회중의 은혜가 되고, 신앙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와 같이 찬양이 찬양의 공동체를 이룰 때에 진짜 은혜로운 찬양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교회로 모이는 것을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로 모인 백성들이 함께 찬양하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코로나로 인하여서 성도 여러분이 교회에 마음껏 모이지 못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마음껏 목소리를 높여서 찬양하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하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상황을 속히 회복시켜 주셔서, 저와 여러분 모두가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의 공동체를 이루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프린스턴에서 공부할 때, 그 지역에서 가장 활성화되는 교회를 다녔습니다. 제가 그 교회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찬양이 살아있었습니다. 주일 예배를 가잖아요. 처음에 30분을 찬양을 합니다. 그 30분을 모든 성도님들이 다 일어서서 찬양을 합니다. 그 찬양소리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둘째는 말씀입니다. 아주 진지한 말씀입니다. 감정적으로 뜨겁게 하는 말씀이 아니라, 찬양을 통해서 감정적으로 된 마음을 정돈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교회가 찬양으로 뜨거워지며, 말씀으로 생각이 깊어지고 성숙하게 되는 그런 교회와 성도님들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속히 하나님께서 현 상황을 회복시켜 주셔서 저와 여러분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교회에 모여서 아름다운 찬양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날을 허락해주실 것을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도제목:
- 숭실교회가 아름다운 찬양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옵소서!
전체 2

  • 2020-07-19 19:26
    찬양으로 말씀으로 뜨거운 교회의 일원이 되길 소원합니다.

  • 2020-07-21 10:04
    아멘~~
    주님께서 속히 코로나를 해결하여 주셔서 마음껏 교회에 모여서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교제하는 은혜를 회복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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