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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5 - 오후찬양예배 설교문(시편32편)

작성자
숭실교회
작성일
2020-07-05 12:23
조회
3337
죄 용서 받은 자의 행복

본문말씀: 시편 32편

오늘은 시편 32편의 말씀을 함께 나누는데요. 이 시편의 말씀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두 가지 팁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 시편이 참회시의 하나라는 겁니다. 제가 시편 6편 설교문을 올려드릴 때에 적었듯이 시편에는 일곱 편의 참회시편이 있습니다. 6, 32, 38, 51, 102, 130, 143편입니다. 이 가운데 32편이 두 번째 참회시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시편 32편 말씀을 나누기 전에 금방 알 수 있는 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고, 그래서 회개하는 시편이구나.”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무슨 죄를 저질렀을 때에 이 시편을 지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단서가 나타나지는 않는데요. 학자들은 아마도 다윗이 바세바와 범죄하였을 때에 지은 시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이 시편에 부제가 “다윗의 마스길”이라고 달려 있습니다. 이 시편에서 처음으로 마스길이라는 부제가 나타나는데요. 시편에는 시편 32편을 포함해서 총 12편의 마스길 시편이 있습니다. (32, 42, 44, 45, 52, 53, 54, 55, 74, 88, 89, 142편). 마스길의 뜻이 “교훈, 지혜”입니다. 그러니까 시편 32편은 교훈이자 지혜의 시편이라는 것이지요. 말씀드린 대로 첫 번째와 두 번째의 팁을 합치면, 시편 32편의 내용은 “죄를 지은 자에게 주는 교훈이자 지혜”라는 뜻이 됩니다. 더욱이 다윗이 스스로 죄를 저지른 자가 되었을 때에 경험하고 얻은 교훈과 지혜를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이 설교문에서는 다윗이 전해주는 교훈이자 지혜 3가지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첫째, 다윗이 죄를 지은 자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죄를 용서 받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자, 기쁨이다.” 그것을 교훈하여 줍니다.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다윗이 이렇게 선언합니다. 허물의 히브리어 뜻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신하는 행위를 말하고요. 죄는 과녁을 벗어난다는 뜻인데, “하나님께서 하라. 혹은 하지 말라. 주신 규범이 있잖아요. 그것을 지키지 않고 벗어나는 일입니다.” 이렇게 허물과 죄를 저지르면 어떻게 되나요? 벌을 받아야 합니다. 때로는 죽음의 벌도 받아야 합니다. 그러니 너무도 무서운 일이고, 두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벌을 받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허물과 죄를 용서 받으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는 겁니다. 다윗은 오늘 시편에서 허물과 죄를 용서 받는다는 것과 관련하여 세 단어를 사용합니다. 1) “사함을 받다. 치워 버린다. 가져가 버린다.” 그런 뜻이고요. 2) “가린다. 이것은 덮어서 드러나지 않게 한다.” 그런 뜻이고요. 3) “정죄를 받다. 이 말은 징계하기 위해서 ‘너는 죄인이야.’라고 선포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허물과 죄를 용서 받는다는 것은 그것을 치워 버려서,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너는 죄인이야!”라고 판결을 받아서, 징계를 받아야 하는데요. 그럼에도 징계를 받지 않는 겁니다. 무슨 말씀이냐면요? 허물과 죄를 범한 사람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됩니다. 마땅히 징계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 치워주시고 덮어주셔서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지 않게 해주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허물과 죄를 용서 받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다.” 그렇게 교훈하는 겁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학교에서 체육 수업을 듣는데요. 그때 체육 선생님이 참으로 무서운 분이셨습니다. 요즘 길거리에 나가면, 가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조금 불량한 사람들을 보게 되잖아요. 그때 체육 선생님이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500cc 급 이상의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그 선생님을 무서워했고요. 무서운 별명을 붙여서 불렀는데, 지금은 생각이 나지를 않아요. 그런데 하여간 중간시험인지, 기말시험인지에 실기시험을 농구로 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체육시간마다 농구연습을 시키셨는데요. 어느 날 체육시간이었습니다. 그때에도 친구들과 농구연습을 하는데요. 어떤 친구가 농구공으로 장난을 했어요. 농구장이 실내 농구장이 아니고, 운동장 한 편에 있으니까요. 일부러 농구골대 뒷면에 공을 세게 던져서, 멀리 튀겨나가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상대편이 멀리까지 뛰어가서 가져와야 하는 거에요. 그때가 제 기억으로는 엄청 더운 날씨였어요. 그러니까 장난을 하는 거지요. 한 친구가 농구공을 세게 던져서 멀리 튀겨나가게 했어요. 그걸 막으려고 제가 그만 손이 아니라, 발이 나가고 말았어요. 그런데 그 순간에 체육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신 거에요. 저를 부르시더니 “누가 농구공을 발로 차라고 했어.” 하시더니, “엎드려 뻗쳐” 그러시는 거에요. 꼼짝없이 꽤 오랜 시간을 그렇게 하고 계셨습니다. 그래도 화가 안 풀리셨던지, “너. 체육 점수 빵점이야.” 그러시더니 출석부에 “0점” 이렇게 표시를 해두시는 거에요. 그 선생님의 성격을 아니까, 아무 소리도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 다음 주까지 정말 지옥과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 체육이 일주일에 3시간이나 되니까, 내신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어요. 0점을 맞으면 절대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해야 되는데, 그 체육 선생님이 너무도 무서운 분이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는 거에요. 한 주 내내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생각으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요. 죽으라는 법은 없더라고요. 우리 반에 그 체육 선생님과 거의 유일하게 친한 친구가 하나 있었어요. 그 친구에게 도움을 청해서, 다음 시간에 그 체육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자초지종을 조근조근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옆에서 친구는 “김현수가 착한 친구입니다.” 그렇게 응원사격을 해주었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듣던 체육 선생님이 “착한 놈이 왜 그랬어?” 그러시더니, 출석부에 적었던 0점을 지워주셨습니다. 얼마나 안심이 되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일도 우리를 이토록 기쁘게 해주는데,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할 벌이 있어요. 심판받고 어쩌면 영원히 지옥에서 살아갈 수도 있는 죄악이 있어요. 다윗이 그랬습니다. 바세바와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충성스러운 신하 바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러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되고 말았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죄를 용서 받는 것이 가장 큰 행복과 기쁨인 것을 알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사죄의 은총을 누리는 행복과 기쁨을 맛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그러면 어떻게 죄 용서를 받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가? 다윗은 “회개하는 일밖에 없다.” 이 사실을 교훈하여 줍니다. 3절로 5절을 보시지요.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바세바와 죄를 지은 다윗이 처음에 행한 일은 죄를 감추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와서 “당신이 죄인이요.”라고 말하기 전까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죄악을 감추려고 했습니다. 그때 찾아온 것이 무엇이냐면요? 양심의 고통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죄를 감출 수 있지만, 하나님께는 감출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너무 고통스러운 겁니다. 그래서 뼈가 상하고, 온 몸에서 진액이 빠져나가는 듯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결국 다윗은 두 손과 두 팔을 다 들었어요. 고통 가운데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하나님께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허물과 죄악을 자복하고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 그렇습니다. 제가 죄를 범했습니다. 죽을 죄를 범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게 회개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이 주시는 용서를 받는 길은 오직 회개밖에 없구나.” 그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교훈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다윗의 교훈으로부터 두 가지를 분명히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죄를 짓고서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습니다. 제가 언젠가 말씀드렸지요? 어느 영화를 보는데요. 도망가는 사람을 추적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술이 너무 좋으니까, 인공위성을 이용해서 추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도망가는 사람이 어디 숨을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공위성보다 더 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저지른 죄를 숨길 수가 없어요. 둘째,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 앞에 다윗처럼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십니다. 우리의 죄를 해결하는 것은 오직 회개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예화가 있지요? 어떤 사람이 꿈에 하나님 나라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천국에 들어가는 문이 있는데요. 문이 큰 자물쇠로 잠겨 있고, 그 앞을 베드로 사도가 기다리고 있어요. 사람들이 그 문을 열고 천국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다윗이 한 사람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떤 열쇠를 가지고 오셨소?” “네. 저는 예배를 열심히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천국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다음 사람이 옵니다. “네. 저는 헌금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천국의 자물쇠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다음 사람이 옵니다. “네. 저는 많은 사람을 도와 주었습니다.” 그러나 천국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왔습니다. “저는 그저 회개의 눈물만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천국의 문이 열리도록 하였습니다. “예배생활, 헌금생활, 봉사생활. 열심히 해보았자 소용이 없다.”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때에 원하시는 단 한 가지는 “너희의 죄를 회개하라.” 그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그러셨습니다. 회개해야 우리가 죄를 용서 받고, 의롭다 여기심을 받으며 천국에 합당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들려주는 이 교훈을 분명히 기억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셋째, 다윗은 회개하고 죄를 용서 받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해주신다고 교훈합니다. 6절과 7절을 보십시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주는 나의 은신처시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다윗이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가를 알았습니다. 그 기쁨과 행복을 다른 사람도 누리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뭐라고 권면하냐면요?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그렇게 권면합니다. 무슨 뜻이냐면요? “기회가 있을 때에, 자신처럼 하나님께 지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으라. 그래서 죄를 용서 받는 행복을 누리라.” 그런 말씀입니다. 이렇게 죄를 회개하여 용서받으면 한 가지 더 은혜를 누립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피난처가 되어주시는 은총을 누립니다. 그래서 모든 환난에서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은혜를 주십니다. 왜냐하면 죄를 회개하고 용서 받으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죄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면 누구의 자녀인가요? 죄의 자녀, 사단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이제 죄를 회개하고 용서 받았습니다. 이제 누구의 자녀가 되나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지키고 보호하는 것처럼, 우리의 부모 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를 지키시고 보호해주시는 겁니다.

제가 설교문을 준비하면서 8절 말씀에 있는 한 단어에 은혜를 받았는데요.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라고 말씀하잖아요. 이게 다윗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하나님께서 죄를 회개하고 용서 받은 자신의 자녀에게 바른 길을 가르치고 훈계해 주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너를 주목하여”라고 말씀하잖아요. 이 말의 히브리어 뜻이 “내 눈이 너에게 있다.” 그런 뜻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이 말씀이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도 주변에 그런 경험을 하신 분들을 알고 계실 텐데요. 어린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어요. 잠시 눈을 떼면 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동생의 자녀가 있는데요. 어린 시절에 잠시 눈을 떼었는데, 아이가 그만 컵에 담겨 있던 뜨거운 물을 쏟은 겁니다. 그래서 화상을 입고 병원에 가고 난리가 났어요. 그래서 부모님들은 어린 자녀들에게 눈을 뗄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그렇게 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나의 눈이 네게 있다.” 그 말씀은 하나님께서 한시도 한 눈 팔지 않으시고, 자신의 자녀를 지켜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시편 121편 4절에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는 말씀이 바로 “내 눈이 네게 있다.”는 본문의 말씀과 유사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눈이 여러분에게 있는 줄로 믿습니다. 특히 코로나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눈이 항상 있어서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제목:
- 주님! 주님의 눈이 우리 성도님 한 분, 한 분에게 있는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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