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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1 - 오후찬양예배 설교문(시편30편)

작성자
숭실교회
작성일
2020-06-21 13:49
조회
4322
노염은 잠깐, 은총은 평생

본문말씀: 시편30편

시편 30편은 다윗의 감사시이자 찬송시입니다. 정말로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은혜를 경험하여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찬송하는 시편입니다. 4절과 12절에서 이 시편이 감사시이면서 동시에 찬송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절에,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12절에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은혜를 베풀어주심은 다윗이 그 은혜를 기억하고 찬송하며 감사하는 인생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찬송하는 마음으로, 그것도 자신의 백성과 더불어서 감사하고 찬송하는 믿음으로 이 시편을 노래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은혜를 경험하여서 이토록 깊은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일까요? 1절과 3절을 보십시오.
1절,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이라는 말은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높여 드립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런 말이고요. “주께서” 이후가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키”라는 접속사,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지금 감사하고 찬송하고 있는 이유를 말하는 겁니다. 그 이유는 “주께서 나를 끌어내셔서 원수들이 다윗을 보고 기뻐하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끌어내셨다.”는 말이 핵심인데요. 히브리어 원어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린다.”는 뜻인데, 은유적으로 사용이 되면 치명적인 위기에서 건져낸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은혜를 받았냐면요? 치명적인 위기, 즉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태에서 건짐을 받아서, 다윗의 원수들이 “이제 다윗이 곧 죽겠지. 깨소금 맛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되지 않은 은혜를 받은 겁니다.

3절,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여기에도 “끌어내다.”는 말이 사용되었는데요. 1절에서 사용된 말씀과는 원어가 달라요. 이 말은 “위험한 상황에서 들고 나온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불이 났을 때 소방관이 불 가운데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을 들고 나와서 살렸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어떤 상황에 있었냐면요? “스올에 있었다. 그러니까 죽음의 세계에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들고 그 세계에서 나오셔서 살려주셨다.” 그런 말씀입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다윗이 중병에 걸려서 다 죽었다.” 이런 상황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고치시고 살려주신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해요. 그래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시편이 오늘 30편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하나님의 놀라운 살려주심의 은혜를 통해서, 철저하게 깨달은 신앙의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나눌 핵심적인 말씀인데요. 3 가지입니다.

1. 다윗은 죽음의 두려움과 하나님의 끌어내어 살려주심의 은혜를 경험하면서, “문제는 자신의 교만에 있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6절과 7절을 보십시오.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이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에 근심하였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 원인은 주의 얼굴을 가리셨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주의 얼굴을 가렸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외면하셨다. 그래서 돌아보지 않으셨다.”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데, 그 하나님이 다윗을 외면하시고 돌아보시지 않으니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6절과 7절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사실 하나님께서 스스로 다윗을 외면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다윗을 떠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다윗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외면하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 6절에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그렇게 고백하잖아요. 다윗은 죽음의 공포에 빠지기 전에 형통하던 때를 살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로 잘 나가던 때였습니다. 그때 어떻게 생각하였냐면요? “나는 이제 탄탄대로야. 이제 영원토록 꽃길만 걸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문제는 뭐냐면요? 그 꽃길을 자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6절을 보면요. “아니”라는 히브리어가 아주 강조되고 있어요. 이 말이 “나”라는 말이에요. “내가 나의 형통함을 만들었어.” 그런 뜻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 잘 되니까, 다윗이 교만하여진 섭니다. 그래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을 모르고 자신의 세계에 빠진 겁니다.

다윗의 인생이 사실 그랬습니다. 성경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고통스러운 꾸지람을 받은 일이 두 번 정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우리아의 아내 바세바와 범죄하였던 때였습니다. 그 범죄로 인하여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들어야 했고, 그 결과로 새로 태어난 아이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취해가셨습니다. 그 범죄한 때가 언제였냐면요? 사무엘하 8장 6절 후반절과 14절 후반절을 보면,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니까, 어떤 이방민족과 싸우든지 승리하였습니다. 그래서 가장 강력한 나라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에 다윗이 바세바와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또 사무엘하 24장과 역대상 21장에 보면 다윗이 자신의 군대장관 요압을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칼을 뽑아 대적과 싸울 수 있는 사람의 수, 그러니까 군사의 수를 계수하라고 명령합니다. 요압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다윗이 강하게 명령합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자신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군사의 수가 얼마나 되는가? 그것을 보고, 자신이 가진 힘이 얼마나 큰가를, 자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전염병을 일으키셔서 7 만 명의 이스라엘 사람을 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외면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교만하여서 자신을 의지하므로, 하나님이 그를 외면하셨고, 그래서 다윗은 죽음의 공포를 맛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철저하게 “내 교만이 문제였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점을 분명히 기억하셔서 절대로 하나님 앞에 나를 내세우는 교만한 모습이 없기를 바랍니다. 특히나 “우리가 형통할 때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 형통함이 내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시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역대상 21장에 보면, “사단이 다윗을 충동하여서” 군사의 수를 헤아리게 했다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씀인가요? “나를 내세우는 교만은” 사단이 우리를 충동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으로 이 점을 기억하시어, 한 순간도 교만한 인생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 다윗은 죽음의 공포와 하나님의 끌어내셔서 살려주심의 은혜를 통하여, “그렇다. 오직 주께만 사는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절, 그리고 8절로 10절까지의 말씀을 보십시오.
2절,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8절로 10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이 죽음의 두려움에 빠져 있었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하나님. 제가 무덤에 내려가면, 그러니까 죽게 되면, 하나님께 찬송도 부를 수 없고요. 하나님의 진리를 세상에 선포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제게 은혜를 베푸셔서, 저를 살려주세요.” 그렇게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8절을 보면,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원문을 보면 “주께”라는 단어가 문장의 첫머리에 있어요.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을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6절에서는 무슨 말을 강조했지요? 다윗 자신이 형통할 때에, 자신을 강조했어요. “내가 형통할 때에” 그렇게 교만하게 자신을 내세웠어요. 그 교만함으로 인하여서, 하나님께서 외면하시고 죽을 병에 걸리니까 자신이 생각했던 자신의 힘, 자신의 재물, 자신의 군사력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것을 다 합쳐도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이제 자신의 살 길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께 “하나님. 나를 살려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 길은 하나님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자여도, 그 재물이 우리를 살리지 못합니다. 아무리 대통령을 하고 그 이상의 권력자가 되더라고 그 생명을 살리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되고, 스타가 되어서 사람들의 인기를 얻을지라도 그것이 우리를 살리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살리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우리의 연약함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것이고, 기도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다윗은 자신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나를 내세우며” 교만했던 다윗이 죽음의 공포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갔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나요? 다윗의 교만 때문에, 다윗을 외면하셨던 하나님께서 다시 다윗을 돌아보셨습니다. 다윗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죽음의 고통으로부터 끌어내셔서 살려주셨습니다. 11절을 보시면,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그의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슬퍼하던 다윗이 춤을 추게 되었습니다. 베옷을 입은 것처럼 죽음을 경험하고 눈물 흘리던 그가 너무 기뻐서 그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앞에서, 다윗은 5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다윗이 교만하여졌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셨습니다. 그때 교만한 다윗에게 찾아온 것은 죽음의 고통이었고, 원수들의 조롱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다윗의 고통은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외면과 진노는 아주 잠시였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교만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로 돌아오셨고 다윗을 살려주셨습니다. 그러한 경험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은총이 너무도 크다. 그래서 영원하다.”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노염은 잠깐이요, 은총은 평생이다.”는 다윗의 고백은 “시간적으로 하나님의 진노는 잠시지만, 그 은총은 영원하다.”는 고백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은총이 그 진노하심보다 훨씬 크고 위대하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하나님께 우리가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보다 은총이 크시기에, 우리의 죄가 아무리 클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내리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하면서, 기도하며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특히 우리로서는 거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 코로나 19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므로 다윗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는 인생으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 주여!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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