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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며 실천하는 교회입니다

2020.06.14 - 오후 찬양예배 설교문(시편29편)

작성자
숭실교회
작성일
2020-06-14 12:21
조회
4064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

본문말씀: 시편29편

시편 29편은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찬양시입니다. 말씀을 연구하면서, 오늘 시편 29편 찬양시편을 교회론 중심으로 설교문을 준비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공동체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29편에서 교회론에 관한 3가지 메시지를 묵상했습니다.

첫째,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예배 공동체입니다.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올려드려라. 이것이 곧 예배이다.”라고 외칩니다. “합당하다는 말은 어울리다. 격식에 맞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군대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군대는 계급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 대우가 틀려집니다. 특히 별을 달면 완전 대우가 달라집니다. 그 중에 하나가 별을 달기 전까지는 승용차가 나오지를 않아요. 그저 지프차만 제공이 됩니다. 그러다가 별을 달게 되면, 승용차가 나옵니다. 그래야 별을 다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대우를 하게 되는 겁니다. 비슷하게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린다는 말은 하나님의 격에 맞는 영광을 올려드린다는 것을 뜻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격에 맞는 영광이란 무엇일까요?

원어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영광”이라는 말은 본래 “무겁다. 중요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올려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가장 중요한 분으로, 가장 위대한 분으로 높여드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가 영광을 받는 일이 있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온 세상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10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영원한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올려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유일한 왕으로 대우해드린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진짜 왕이 계시다면, 그 분 외에 다른 대상이 영광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왕이 가장 중요한 분이고, 가장 높은 자리에 계신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올려드린다는 것은 오직 왕이 되신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려드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예배공동체라는 의미가 무엇이냐면요? 교회에서는 자신의 왕 되시는 하나님 외에 영광을 받는 존재가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려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예배의 대상은 오직 왕 되신 하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주목 받고,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는데요. 5절과 6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소리가 레바논의 백향목을 꺾어버리고 시룐(헤르몬산)을 진동시키신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레바논과 시룐, 곧 헤르몬산이 어떤 곳이냐면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가장 많이 사로잡았던 신이 바알신입니다. 이 바알신이 풍요를 상징하는 신인데요. 이 바알 신의 집이 레바논과 시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소리가 우상의 집인 레바논과 시룐까지도 무너뜨리고 부수어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하나님 외에 참 신이 없다는 것이고, 하나님 외에 참 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 외에 어떤 다른 신에게도 영광을 돌려서도 안 되는 것이고, 다른 왕에게 예배해도 안 되는 곳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입술로는 이것을 고백하면서도, 종종 이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대상이 주목을 받아서는 안 되는 교회에 자꾸만, 인간이 주목을 받는 경우가 나타납니다. 오늘날 문제가 되는 교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다 하나님보다 인간이 주인이 되고 주목 받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 외에 대상이 주목을 받으면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 받으셔야 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반드시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예배 받으시고, 영광 받으시는 일만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둘째, 교회는 하나님의 소리의 공동체입니다. 3절을 보시면,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우렛소리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소리가 3절로 9절까지 7차례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소리를 통하여 하나님은 만물 가운데 자신의 영광과 능력을 드러내십니다. 그 소리로 모든 자연만물을 지배하시고, 두려워 떨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우렛소리에 비유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렛소리는 천둥소리를 말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천둥소리가 어떻게 나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그것을 신의 소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크고 무서우니까, 그것을 들을 때는 특히 두려운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종교개혁가 루터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본래 법학도를 꿈꾸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천둥과 번개가 치는 날에 친구와 함께 길을 걸었는데요.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옆에 함께 가던 친구가 그것에 맞아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 때문에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힌 루터는 자신의 죄인 됨을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수도사가 되어서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요? 하나님의 소리는 죄 있는 인간에게 두려움의 소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짓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어서 자신의 소리, 자신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그때 하나님의 목소리는 우선적으로 심판의 소리로, 그래서 두려운 말씀으로 들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소리는 두려움의 소리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심판의 말씀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조금 후에 다시 나누겠지만, 11절을 보면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힘을 주시고 복을 주시는 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예언서를 읽으면서, 항상 은혜를 받습니다. 그 이유는 예언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에 놀라기 때문입니다. 모든 예언서는 심판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하나님의 소리,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이 심판의 소리가 하나님의 궁극적인 소리는 아닙니다. 모든 예언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소리는 결국 여전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소리, 그 두려운 말씀 역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이스라엘과 자신의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소리공동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곧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인간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향해서 하나님의 소리를 들려주고 선포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두려운 소리도 들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세상을 향하여 교회가 들려주어야 할 하나님의 소리는 사랑의 소리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소리를 들려주는 교회 공동체, 우리 숭실공동체가 되기 바랍니다.

셋째, 교회는 하나님의 복의 공동체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11절에,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자신의 백성에게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 자신의 백성에게 평강의 복, 샬롬의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교회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인가?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복의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우리 숭실교회가 어떤 공동체인가?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복의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성도 여러분. 저는 새벽마다 “주님! 오늘도 우리교회의 성도들이 다 행복하게 살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왜 그렇게 기도하냐면요? 우리교회에 나오시는 분들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행복하게 살기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복의 공동체로 소문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제가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기복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복신앙의 문제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기복신앙적인 사람은 지나치게 물리적인 복만 바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복을 이기적으로 생각하여서, 나만, 내 가족만, 내 자녀만, 복 받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장신대의 한 교수님이 쓰신 복의 신학이라는 논문이 있어서 잠시 돌아보았는데요. 복을 소망하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복은 영적인 것도 있고, 물리적인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 소망하는 것이 신앙적입니다. 그런데 이 복을 소망하는 신앙이 건강하려면 몇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1) 진짜 가장 큰 복이 무엇인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 복. 이것이 가장 큰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리적인 복이 가장 큰 복이 아닙니다. (2) 물리적인 복도 그것을 자신만 위해서 쌓는다면, 그것은 진짜 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에 쓰는 것이 진짜 물리적인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 있잖아요? 그 어리석은 부자처럼 풍성한 소출을 자신만 위해서 쌓아놓은 사람은 진짜 복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3) 자신만 복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진짜 원하시는 것은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 오셨던 서울여대 장경철 교수님께서 그리스도인은 복의 유통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시지요?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어떤 존재로 부르셨습니까? 세상을 향한 복의 통로로 부르셨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교회가 복의 공동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 교회를 통해 성도 여러분이 복의 사람들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분 혼자 복된 존재 되지 마시고, 세상으로 하나님의 복을 전하는 복의 통로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 우리 교회는 하나님만 영광 받으시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한 교회, 교회를 찾는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받는 교회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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