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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며 실천하는 교회입니다

2020.05.20 - 수요기도회 설교문(시편24편)

작성자
숭실교회
작성일
2020-05-20 15:58
조회
4503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
본문말씀: 시편 24:1-10

오늘은 시편 24편의 말씀을 나누는데요. 제목을 “성전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이라고 정하였습니다. 3절에 보면, “여호와의 산에 오늘 자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라고 다윗이 노래하고 있는데요. 여호와의 산, 그의 거룩한 곳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시온 산, 곧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시편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 찬양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특히 7절에서 10절은 우리에게 익숙한 구절입니다. 이 구절에 붙인 찬양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들아 머리 들어라~~”는 찬양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성전에 들어가시니까, 성전 문을 열어라.” 그런 말씀입니다. 특히나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언약궤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를 전쟁터에 종종 메고 갔습니다. 언약궤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언약궤를 메고 전쟁터에 나가면, 하나님께서 그 전쟁을 대신 싸워주셔서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리고는 전쟁이 끝나면 언약궤를 메고 돌아와 성막,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이 완성된 후로는 성전에 가져다 놓습니다. 그때 부르는 찬송이 시편 24편, 특히 7절로 10절입니다. 그러니까 시편 24편은 성전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항상 성전 가운데 임재해 계시기를 소망하면서, 부르는 찬양이었습니다. 이 시편 24편은 10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새겨 보겠습니다.

먼저 1절과 2절입니다. 소제목을 붙인다면,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렇게 붙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라고 말씀하나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땅에 있는 것들을 다 지으셨습니다. 온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창조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작품들입니다. 그래서 세상 모두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주인도 누구신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주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분이기에 우리의 주인이 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저와 여러분으로부터 예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우리로부터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 나올 때에 무슨 목적을 생각하면서 나와야 하나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나오는 겁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나오는 겁니다. “찬양한다. 예배한다.”는 말씀의 기본 의미가 무엇이냐면요? 바로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겁니다. 그러니 분명하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교회에서는 사람이 높임을 받아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목사도 그렇고요. 죄송하지만 우리 장로님들도 그렇고요. 그 누구가 될지라도, 이 성전에서 높임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오직 우리를 지으시고, 그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만 높임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만 찬송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만 예배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단락은 3절에서 6절까지인데, 누가 창조주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시는 성전에 들어가서 예배할 수 있는가? 그것을 말씀하여 줍니다. 좀 전에 읽은 3절 말씀에 “여호와의 산에 오늘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그렇게 말씀하잖아요. 누가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에 올라가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서 예배할 수 있는 인생들인가? 4절을 보십시오.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우리나라 말로는 네 가지 조건인 것 같은데요. 히브리 원어로 보면, 세 가지 조건이에요.
(1) 손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손”은 모든 활동을 하는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손이 깨끗하다.”는 말씀은 외적인 행동이 깨끗하다는 뜻입니다.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삶에서 깨끗한 행위를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서 도둑질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손이 깨끗한 사람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 서서 예배할 수가 없는 거에요. 구약성경에 나오는 아간이 그랬습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그 성에 있는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니 손대지 말라고 했는데, 아간이 그만 금덩어리에 마음이 빼앗겨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였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2)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개역개정으로는 마음이 청결한 것과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않는 것이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 같은데요.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서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 의미가 어떻게 되냐면요?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뜻입니다. 허탄한 데는 무엇인가? 바로 우상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면요? 그 마음과 생각으로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은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할 수 있는 사람이 못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대상이 우상숭배자이기 때문입니다.
(3) 거짓 맹세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을 참 싫어하십니다. 왜냐하면 거짓은 사단의 도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불순종하게 만들고 타락한 원인이 어디에 있었나요? 뱀, 사단의 거짓말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그렇게 말씀하셨는데요. 사단이 다가와서 죽지 않는다. 하나님처럼 된다. 그렇게 거짓말을 하였고,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거짓말에 속아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짓을 말하는 것을 정말 싫어합니다. 저도 싫어합니다. 그래서 제 두 아들 녀석이 다른 잘못을 하면 야단을 잘 안 치는데, 혹시라도 거짓말을 하면 아주 강하게 야단을 칩니다. 거짓말쟁이는 사단의 자녀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상의 세 가지를 다시 정리해 보십시다. 손이 깨끗한 자는 외적인 행위가 성결한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청결한 것은 그 마음에 우상이 없으므로 성결한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입술의 성결, 말의 성결을 말합니다. 결국 행위와 마음과 입술이 성결한 자, 이 세 영역에서 거룩한 자가 하나님 앞에 서서 예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5절을 보시면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라.”고 말씀합니다. 행동과 마음과 입술이 성결하고 거룩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기뻐받으시고요. 그 예배자에게 복을 주신다. 그리고 의롭게 만들어 주시고 구원을 주신다. 그 말씀입니다.

그런데 걱정이 생깁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는 행위, 마음, 입술이 성결한 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면에서 100% 성결한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늘 애쓰지만,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할 수 없다는 말인가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인가요? 그런 염려와 걱정이 생깁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6절이 참 위로가 되는데요.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찾는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계신 성전에 나가 예배하는 목적인 되는 것인데요. 이 두 표현은 다 우리가 부족하다는 겸손한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거룩한 자가 되려고 해도, 늘 부족합니다. 늘 넘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구하는 겁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예배의 자리에서 우리의 부족함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단락은 7절에서 10절입니다. 서두에서 적었습니다. 이 구절은 아주 웅장한 찬송으로 부르는데요.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성전 가운데에 영광으로 임재하시기를 소망하면서 부르는 겁니다. 그래서 이미 적었듯이 이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를 메고 전쟁터에 나갔다가 다시 돌아올 때, 부르는 찬송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편 24편을 지은 다윗에게는 7절에서 10절이 더욱 특별한 구절이었습니다. 이 구절이 사무엘하 6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무엘하 5장 말씀을 보면, 다윗이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는 왕으로 등극을 합니다. 그리고는 가장 먼저 하는 일이 6장에 보면, 하나님의 언약궤를 자신이 거주하는 다윗 성,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겁니다. 6장 2절에 보면,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언약궤를 덮는 덮개가 있습니다. 속죄소입니다. 이것은 언약궤를 덮는 뚜껑인데요. 좌우에 그룹을 형상하는 날개 같은 것이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이에 좌정하시어 이스라엘과 함께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약궤를 옮겨서 자신이 있는 곳 예루살렘으로 옮겨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언약궤를 옮기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수레에 싣고 가는데,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 소가 뛰었습니다. 수레에 실었던 언약궤가 떨어지려고 하자 웃사라는 사람이 만졌는데, 그대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겁을 잔뜩 집어먹었습니다. 그래서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다가 중단하고는 오벧에돔의 집에 두었습니다. 3개월을 두었는데,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하나님께서 엄청난 복을 부어주셨습니다. 다윗이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용기를 내어서 언약궤를 옮겨오기로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놀라운 복이 임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언약궤를 다시 옮겨 올 때에, 사무엘하 6장 14절과 15절에 보면,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언약궤를 메고 오는 것이 너무도 기뻤습니다. 하나님이 이제 자신과 함께 하시고, 자신과 자신의 백성들에게 복 주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 백성과 더불어 나팔을 불며 춤을 추면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겼습니다. 바로 이때 부른 찬송의 가사가 오늘 함께 나눈 시편 24편 7절에서 10절의 말씀이라는 겁니다. 언약궤를 통하여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영광의 왕을 모시고 간다. 그러니 성전의 문을 열고, (당시에는 천막교회였겠지요.) 그 성전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맞아들이라. 그런 뜻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교회에 나올 때마다 다윗과 같은 마음으로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하면 좋겠습니다. 여기 이 숭실교회에 하나님이 계시니 얼마나 기쁜가? 그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받아 주시고, 기도를 들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실 터이니 얼마나 좋은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렵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 믿음으로 늘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고, 예배의 자리에 나오실 때마다 기쁘고 즐겁게 찬양하고, 은혜를 사모하면서 간절히 기도하며,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하나님! 비록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리가 더욱 예배의 자리를 사모할 수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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