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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3 - 수요기도회 설교문(시편22편)

작성자
숭실교회
작성일
2020-05-13 14:04
조회
4642
어찌하여!

본문말씀: 시편22편

오늘 함께 나누는 시편 22편은 가장 유명한 시편 가운데 하나입니다. 교회역사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고 묵상되어 온 시편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 1절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이 1절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하신 말씀,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22편은 고난주간에 많이 묵상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설교문을 준비하면서, 시편 22편에 대하여 새로운 것을 하나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시편 22편이 유대인들이 부림절에 읽고 노래하는 시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림절이 무엇인지 잘 아시지요? 바사 왕, 그러니까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 왕이 통치하던 때에 에스더라는 여인이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만이라고 하는 이방 사람이 유대인을 몰살시키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그때에 에스더를 딸같이 키운 모르드개의 지혜와 에스더의 용기, “내가 죽으면 죽으리라.”는그 용기에 의해 몰살을 면하게 됩니다. 이 일을 기념하는 절기가 부림절인데요. 그래서 부림절은 “하나님께서 악인의 음모로 죽을 뻔한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신 은혜”를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이때에 시편 22편을 함께 낭송하고 노래합니다. 왜 그랬을까 깊이 생각해보았는데요. 22편의 구조가 부림절의 상황과 꼭 맞아 떨어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22편에서 다윗은 “어찌하여”라는 탄식으로 시작하는데, 갑자기 찬송과 감사로 시편을 마무리하고 있어요. 하만에 의해서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나서 기뻐했던 분위기와 아주 비슷한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시편 22편을 중요한 몇 구절을 보면서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이 시편을 보면 다윗은 처음에는 죽을 것 같은 상황에 있었습니다. [하만에 의해서 몰살당하기 직전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비슷한 거에요.] 다윗이 이런 상황에 놓여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대적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12절에 보면 이 대적은 바산의 힘센 황소같고요. 13절에 보면, 먹잇감을 향하여 포효하는 사자와 같고요. 16절에 보면 먹잇감을 두고 으르렁거리는 개들 같습니다. 다윗이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운 대적들이 둘러싸고 있는 겁니다. 곧 죽을 수도 있는 위기에 직면해 있어요. 그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응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어찌하여 나를 돕지 아니하십니까?” 이렇게 탄식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그렇게 원망하고 탄식하고 있던 다윗이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찬송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22절을 보세요.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갑자기 탄식에서 분위기가 바뀌어서 다윗이 백성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겁니다. 자기만이 아닙니다. 23절에 보시면,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외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아요. 27절에 보면, “땅의 모든 족속과 나라”에게도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그럽니다. 29절에 보면,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 한 마디로 죽은 자도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노래하고요. 마지막으로 30절에 보면, 후손대대로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그럽니다. 그러니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누가 이 상황에서 다윗을 보면 이상했을 겁니다. 예를 들어서 엉엉대며 우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조금 있다 보니까 파안대소하고 있어요. 그러면 “저 사람 이상한 사람 아니야?”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난다.” 그런 말도 있습니다. 울다가 갑자기 웃으면 이상한 거에요. 그런데 지금 다윗이 그러고 있습니다. “어째서? 나를 버리셨나요?”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그러니까 이상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연구를 하다보니까, 학자들도 이러한 22편의 내용변화가 신기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분위기 급변”의 시편이라고 평가를 합니다. 탄식에서 찬송으로, 원망에서 감사로 분위기가 급변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1절의 탄식이 22절 이후의 찬송과 감사로 바뀔 수 있었을까요? 분위기 급변을 보이는 다윗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제가 이 질문을 해결하려고 연구하다가, 한 재미있는 논문을 읽게 되었는데요. 대부분의 학자들이 시편 22편 1절에서 21절을 “탄식시다. 혹은 탄원시다.”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읽은 논문에서는 시편 22편을 탄식시라고 하지 않고 “의지시다.”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시편 22편은 탄식형태의 문장으로 기록되었으나 이 시의 신학적인 내용과 성격은 탄식이 아니고 오히려 심각한 탄식을 할만치 생의 절망과 죽음 직전의 곤경에 빠진 한 경건한 사람이 그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용기를 얻고 다시 찬송과 감사의 시로 바꾸어진 시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탄식시가 아니라 의지시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 주장을 읽고 시편 22편을 다시 읽어보니까 맞는 것 같았습니다. 다윗이 절망의 상황에서, 그러니까 탄식의 상황에서, 찬송으로, 감사로 급변한 것은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이에요.

자. 몇 구절 말씀을 통해 이러한 신앙의 모습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먼저 4절과 5절을 보십시오.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의뢰하다.”는 말이 세 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뢰하다.”는 말의 원어는 “바타흐”인데, “믿다. 신뢰하다.”는 뜻입니다. “부르짖다.”는 말은 “믿고 신뢰하니까 부르짖어 호소하고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씀이냐면요? 다윗이 지금 개인적으로 엄청난 위기의 상황입니다. 주변에 대적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래서 곧 죽을 지경입니다. 그래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그러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탄식하듯이 기도하는 다윗의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과 확신이 있냐면요? 다윗의 조상들이,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림절과 같은 수많은 고난이 있었는데, 하나님을 의뢰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부르짖었기 때문에,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는 확신이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의 기적이 그렇습니다. 애굽에서 400년 넘게 고난을 받았어요. 그래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부르짖어 기도했어요. 출애굽기 2장 23절에서 25절,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여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이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고난 중에서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어서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거에요. 그러니까 구원의 은혜를 받으려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이것이 조상을 통하여 다윗이 얻은 신앙의 교훈이에요. 그래서 “어찌하여?”라면서 탄식하는 다윗의 심정에는 “나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어찌하여?”는 탄식의 소리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 하나님은 저를 결코 버리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의지신앙, 신뢰의 신앙을 표현하는 거에요.

이제 6절에서 8절을 보십시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이 구절들은 대적이 다윗을 조롱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윗이 지금 대적들에게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어요. 대적들은 그 상황을 즐기고 있어요. “야. 다윗아. 너 네 입술로 하나님을 의지한다. 그분이 너를 구원하신다.” 그러지 않았냐? 그런데 지금 네가 의지하는 하나님이 어디 있냐? 그렇게 조롱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의지해보았자, 소용이 없다. 그러니 포기해라. 그러는 거에요. 그런데 바로 이 상황에서 다윗의 엄청난 신앙고백이 들려옵니다. 9절과 10절을 보십시오.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가장 멋진 표현이 “주께 맡긴 바 되었다.”는 표현인데요. 이 말의 뜻이 “주께 던져졌습니다.” 그런 뜻입니다. 어머니의 배속에서 나올 때에 세상에 던져진 사람이 아니라는 거에요. 하나님의 품에 던져진 사람이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날 때부터 누구를 의지할 수밖에 없냐면요?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 나를 책임져 주십시오.” 그런 말입니다.

바로 이러한 믿음에서 울부짖는 기도의 소리가 “어찌하여!”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단순히 탄식이나 원망이 아닙니다. 조상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부르짖어 구원을 받았듯이,” 다윗 자신도 “하나님밖에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 없다.” 그 믿음, 그 의지의 신앙으로 부르짖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절대로 외면하시지 않는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품에 던져진 사람,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냐면요? 21절을 보십시오.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사자. 들소. 개. 이런 것이 대적의 위협을 표현한 말이었잖아요. 다윗이 이렇게 무서운 대적들에게서 구원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다윗이 선언하는 믿음의 말이 “구원하셨나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고백이 과거로 되어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이미 일어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이 과거를 진짜 일어난 과거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윗이 확신을 가지고 고백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무슨 말이냐면요? 다윗은 지금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구원해주실 것을 확신하고 기도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미 자신의 부르짖는 기도가 하나님께 응답되어서, 자신의 대적으로부터 구원해주실 것을 확신하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선포하는 거에요. 자신이 신뢰하는 하나님이 이미 구원의 역사를 베풀어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표현하는 거에요. 그래서 탄식에서 급변하여 찬송이 되는 거고요. 원망에서 급변하여 감사를 하는 거에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 다윗이 보여주는 이와 같은 신앙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철저한 의지와 확신의 신앙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 나는 하나님 품에 던져진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셔야 합니다.” 이 신앙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자식이 부모님에 대하여 이런 마음을 가지면, 부모님이 애타하시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하여 자식을 위해 선한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애타게 만드는 의지의 신앙, 확신의 신앙으로 나가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하나님! 오늘 코로나 19의 고통 가운데 있는 저희들이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확신하는 신앙으로 이기며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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