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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설교문 - 시온에서 (시편 14:1-7)

작성자
숭실교회
작성일
2020-04-17 20:21
조회
3201
시온에서

본문말씀: 시편 14:1-7

이 설교문을 통해 함께 나누는 시편 14편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주는 시편입니다. 시편 14편 기자인 다윗은 특히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주기를 원하느냐면요? 1절에 나오는 “어리석은 자”에게 알려주고자 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없다.” 이 말은 “하나님이 존재하시지 않는다.”는 존재론적 무신론을 이야기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다 신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가 생각하는 하나님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이 계셔도 아무 역할을 못하신다.”는 기능적 무신론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 교육관 뒤편 천정에 보면, CCTV가 달려 있습니다. 아예 달려 있지 않으면, 존재론적으로 없는 겁니다. 그런데 달려 있기는 한데, 작동을 하지 않는다면 달려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무용지물이 되는 겁니다. 어리석은 자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이거에요. 하나님이 있지만, 아무 작동을 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계시지만, 어리석은 자는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냐면요? 1절 후반절로부터 4절까지를 보시면 한 마디로 어리석은 자는 부패하고 행실이 가증하여서, 악한 일만 행하고 선한 일은 하나도 행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악한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아무런 일을 행하시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CCTV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 교육관에 들어와서, 우리 찬양대가 아끼는 악기를 훔쳐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들어와 보니까, CCTV가 있어요. 그게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할까요? 훔쳐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CCTV가 모양만 있고 작동을 하지 않아 무용지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들키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자신이 생각한 대로 훔쳐가는 겁니다. 지금 어리석은 자가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이 무용지물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모든 악한 일을 하고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가 “하나님이 없는 인간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이 없으니까, 다시 말씀드리면 악한 것을 바라보고 최후 심판을 하시는 하나님이 없으니까, 악한 일을 마음대로 행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무신론이 참으로 무서운 겁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에 한 친구와 크게 다투었습니다. “하나님이 있다.” “아니다. 없다.” 그것으로 싸웠어요. 그 친구 말이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라. 그러면 자신도 믿겠다.”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그럼 너는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봐.”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그 친구 하는 말이 “나는 내 머리를 믿을 뿐이지. 하나님은 믿지 않아.” 그러더라고요. 그 친구가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전교 1, 2등을 다투었거든요. 그래서 서울대 법대에 가서, 지금 판사에요. 그러나 그 친구의 부정을 저는 알고 있어요. 고등학교 때 체육을 너무 못했어요. 그래서 실기점수가 미였어요. 그런데 선생님을 한번 만나는 것을 보았는데, 다음에 보니까 수로 바뀌었어요. “하나님이 없다.” 그 생각을 하니까, 그게 가능하게 되는 겁니다. n번방과 같은 무서운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심리가 저는 이렇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악행을 돌아보는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두려움 없이 그토록 가증스러운 일을 행하는 겁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에서 다윗이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어리석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이 무용지물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생각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진짜 하나님이 아무런 역사도 하시지 않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세상을 돌아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2절에 보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시고 계시는 분이”입니다. 이 하나님이 어떻게 세상에 역사하시냐면요?

1) 5절을 보세요.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여서 악한 일을 서슴없이 행하는 인생들의 결론이 무엇인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강조법인데요. “엄청난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그런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의인의 모임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은 없다. 하나님은 계셔도 무용지물이다. 그렇게 생각하여서, 온갖 악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결국에 어떤 것을 알게 되냐면요? 자신들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래서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했던, 그 하나님이 의인들 가운데 계십니다. 자신들과 같이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악을 저지르면서 살아간 자들에게는 없어 보였지만, 하나님께서 의로운 사람 가운데 계시고 그들과 함께 계시는 것을 결국에는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이것은 확연하게 보게 되는가? 바로 하나님 보좌 앞입니다. 심판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결코 악한 자의 손을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누구의 손을 들어주시는가? 바로 의인의 손을 들어주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비결이 어디에 있나요? 악한 자의 편에 가까이 하지 않는 겁니다. 악한 자가 세상에서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그와 함께 하면 안 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러한 자와 하나님은 함께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의로우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한 자, 의로운 자와 함께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결코 이 세상 살면서 악한 자의 편에 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2) 6절을 보세요.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가난한 자의 피난처가 되어주시는 분입니다. 어리석은 자, 악한 자가 하나님이 없다. 그러니 자신이 아무리 악한 일을 해도 하나님은 아무런 일도 못하신다. 이런 생각을 하니까, 가난한 사람들, 힘이 없는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가난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그것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한때 우리를 분노하게 만들었던 갑질하는 사람들이 꼭 이런 사람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힘이 있는 사람이 되게 하셔요. 또 재물을 많이 주셔서 부자가 되게 하셔요. 왜 그렇게 해주시는지 아시나요? 갑질하라고 주시는 게 아닙니다. 힘이 없는 사람을 괴롭히라고 힘을 주시고 재물을 주시는 게 아닙니다. 세상을 위해 봉사하라고 주신 겁니다. 가난하고 힘이 없는 사람을 하나님을 대신해서 도우라고 주신 겁니다. 그렇지 않고 갑질하는 데 사용하면, 차라리 힘이 없는 게 나아요. 재물이 없는 게 나은 겁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자신들이 가진 힘으로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면요? 가난한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시는 분입니다. 물론 무조건 가난하다고 다 피난처가 되어주신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가난한 자들의 영성”이라는 것이 있어요. 가난하잖아요. 힘이 없잖아요. 그러면 세상에 의지할 대상이 없어요. 그러면 누구를 바라보게 되어 있냐면요?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거에요. “하나님! 하나님 밖에 저를 돌아보실 분이 없습니다. 하나님마저 저를 외면하시면, 저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전적으로 하나님만 바라보는 영성을 가진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이에요. 하나님이 그러한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세요. 그 사람들을 돌보시고 피난처가 되십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도 가난한 자들의 영성을 소유하는 성도님들 되기 바랍니다. 제가요. 부모가 되고 보니까요. 자식들이 저를 자꾸 찾아주기를 바랍니다. 자식이 뭔가를 도움을 요청하기를 은근히 바랍니다. 제 마음에는 어떤 마음이 있냐면요? 그게 제 존재이유인 것 같고요. 자식에게 있는 것, 없는 것 다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저는요. 그게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성경을 보세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요. 나. 힘이 있어요. 그래서 나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요. 너무 나약해요.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어요. 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 그렇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게 곧 믿음이에요. 그래서 이미 우리가 2장 12절에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피한다. 이 말이 의지한다. 그 말이에요. 그러니 여러분. 가난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께 의지하는 분들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분이 행복한 분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고백하냐면요? 7절을 보세요.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어대로 번역하면 “누가 이스라엘의 구원을 시온으로 부터 나가게 할 것인가?” 이렇게 번역할 수 있어요. 의문문이 아니라, 일종의 감탄문이에요. 대답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구원을 베풀어줄 수 있나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어떤 성경에서는 이 구절을 기도문으로 번역하고 있어요. “하나님이여! 시온에서 나오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십시오.” 좀 전에 말씀드렸던 가난한 자들이 되어서 “하나님!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주시면,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겁니다.” 그러면 행복하게 되는 것이지요. 비록 코로나 바이러스의 사태로 인하여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지만, 가난한 자들의 영성으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바라보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감격과 은혜를 더 풍성하게 누리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한 가지만 더 생각하고 끝을 맺습니다. 왜 시온에서일까요? 시온은 어디지요?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말하는 게 아니고, 예루살렘 가운데 있는 성전을 말하는 겁니다. 그 성전에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시온에서 나오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는요.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교회로부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는 겁니다. 저는 그래서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다.” 이 확신을 버릴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교회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서 세상 가운데 임재해 계시고,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하시기 원하십니다. 교회를 통해서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를 원하시고,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복된 곳으로 만들기 원하십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잘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다시 한 번 그래서 세상을 향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숭실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기도제목:
- 우리 숭실교회가, 우리 숭실 성도가 어려운 세상의 소망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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